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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회의 법안 통과 직전 사망한 민주당의 에드워드 케네디. |
“나의 어머니는 생애 마지막 한 달 동안, 자신이 회복될지 여부보다 의료보험이 비용을 커버할 수 있을지 더 걱정하면서 지냈다.”
결국 오바마의 어머니는 53살에 난소암으로 사망했는데, 이런 개인적 체험 때문인지 오바마는 전 국민 의료보장을 자신의 임기 중에서 첫 번째 개혁 목표로 삼았다. 사실 국민의 15%가 건강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 대해서 별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여러 단점에도 불구하고, 시장경제의 효율성이 주는 장점이 훨씬 크다고 믿는 사람들이고, 시장 경제의 효율성을 유지하거나 정부 개입의 비효율성을 막는 대의를 위해서라면 어느 정도의 비용은 불가피하다고 보는 입장이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공화당도 시대상황에 따라서 ‘메디케어’를 확대 적용하는 정책을 추진한 적이 있기 때문에, 그것이 곧 절대 포기 불가능한 공화당의 이념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게다가 전국민 의료보험 제도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2차 대전 전후부터 지금까지 과반을 넘는 국민들이 지지를 보인 적도 많았다. 따라서, 공화당이 주장하는 것처럼 국가 개입에 대한 반감과 시장경제에 대한 믿음 때문이라기 보다는 현행 미국 건강보험체계로 인해서 이익을 보는 이익 집단의 집요한 정치적 방해가 진짜 이유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오바마의 대통령 취임 이후 민주당이 애초에 의도한 것은 민간보험제도 이외의 공적보험 제도를 만드는 것이었다. 하지만, 공화당과 보험회사 등의 이해관계 집단의 격렬한 반대로 민주당은 다소 후퇴한 지금의 ‘오바마케어’를 내놓았고, ‘오바마 케어’는 2009년 12월 상원, 2010년 3월 하원에서 법안으로 가결되었다. 하지만, 14개 주 검찰총장들이 위헌 소송을 제기했고, 2010년 12월 버지니아 주 연방지법은 최초로 위헌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2011년 8월 버지니아 주 연방지법 항소심에서는 위헌소송을 기각했다) 위헌 소송이 이어지는 가운데, 2011년 9월 오바마는 대법원에 위헌심판을 제청하고 마침내 2012년 6월 18일 대법원은 논란이 되던 '개인의 보험 의무가입 조항'이 합헌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건강보험에 대한 개인의 의무가입이 당연시되는 우리로서는 다소 이해하기 어렵게 들리겠지만, 이번 법안에 대해서 위헌 소성을 제기한 쪽에서는 보험에 가입하지 않을 권리를 침해 당했다고 주장한다. 재미있는 것은 이번 소송에서 예상과 달리 합헌 쪽에 선 것으로 알려진 존 로버츠 대법원장이 의회가 경제활동을 규제할 수 있는 권한에 민간보험을 강제할 권리는 포함할 수 없다고 해석했다는 것이다. 이는 전통적인 보수주의자들의 논리에 동의했다는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합헌판결이 내려진 이유는 그가 건강 보험 의무가입을 하지 않은 사람들에 대한 벌금부과를 정부가 하는 과세행위로 해석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자신의 정치적 이념과는 무관하게 전 국민이 건강 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현실에 대해서는 문제의식을 공유한다. 폴 크루그만처럼 이번 법안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오바마케어’가 장점보다 단점이 많다고 생각해서 반대의견을 표현했던 시카고 대학의 게리 베커 역시 전국민 의료보험의 아이디어 자체에는 찬성한다. 나는 이번 ‘오바마케어’의 통과가 미국의 미래를 바꾸는 시작이 될 것으로 본다. 오바마의 3대 개혁은 크게 ‘오바마케어’로 불리는 건강보험 개혁, 그리고 ‘도드-프랭크’ 법안과 ‘볼커 룰’로 불리우는 금융시장 개혁, 그리고 교육개혁 정책인데, 이 세 가지 개혁은 미국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바꿀 것이다.
2007년부터 시작된 미국의 부동산 시장 거품의 붕괴는 2008년 '베어즈 스턴즈'과 '리먼 브라더스'의 도산으로 정점을 이루었다. 1997년 한국의 재벌들의 부도 사태에 대해서 시장원칙에 따른 해결을 주문했던 미국이었지만, 막상 자신들의 은행과 기업들이 부도 위기에 처하자, 엄청난 규모의 공적 자금의 투입과 연준의 막대한 유동성 투입이 이루어졌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위기에 대처하는 미국의 모습이다. 부동산 거품 붕괴와 금융기관 도산에 대응했던 일본과 비교해 미국은 훨씬 민첩하게 정부와 중앙은행이 대응에 나섰고, 아직 기대에 미치지는 못하고 있기는 하지만 회복 속도도 훨씬 빨랐다. 미국 경제는 경기침체를 겪기는 했지만 어쨌든 우려했던 디플레이션 위기에서는 벗어났으며 향후 3% 이하의 완만한 성장률을 예상하고 있기는 해도 2015년 이전에는 성장률과 실업률 모두 정상궤도로 진입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이 금융위기에 대처하는 방식은 단지 거시경제적인 면에 그치지 않았다. 미국은 아무도 예상 못했던 흑인 대통령을 선출했고 당선된 오바마는 건강보험 개혁과 금융시장 개혁에 칼을 빼 들었다.
비록 원래의 의지에서 후퇴한 면이 있지만, ‘오바마케어’의 의회 통과와 이번 합헌 판결을 살펴 보면 민주당의 입장에서 상당히 감격스러운 면이 있다. 클린턴 대통령이 취임한 직후, 대통령의 부인인 힐러리 클린턴이 직접 건강보험 개혁의 전권을 갖고 추진했음에도 불구하고 실패한 뼈아픈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그때와 지금의 차이로 여러 가지를 들 수 있지만, 가장 큰 차이는 역시 이번 오바마 정부가 공화당의 여러 실책이 거시적 문제와 결합되어 나타난 금융위기라는 큰 이벤트의 결과로 등장했다는 사실일 것이다. 오바마 정권의 입장에서는 위기의 국면에서 등장했기 때문에 자신들의 원하는 개혁을 추진할 수 있는 명분과 힘을 확보할 수 있었다. 즉, 클린턴 정부 때와는 달리 공화당과 이해집단의 전면적인 정치적 사보타지가 불가능했다.
건강보험 개혁을 시도한 오바마가 집중한 또 하나의 개혁은 금융시장 개혁이었는데, 굳이 비교하자면 건강보험 개혁보다는 상대적으로 접근과 실행이 쉬웠다. 월가는 금융위기를 일으킨 탐욕의 집단으로 낙인이 찍힌 상태였고, 개혁을 거부할 정치적 명분을 찾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즉, 미국처럼 기존의 이익 집단이 엄청난 자금과 정치적인 힘을 갖고 로비를 통해서 이해관계를 실현시키는 상황에서는 그들의 이해에 반하지만 국가 전체로 보면 이익이 되는 정책을 관철하는 것은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거의 불가능하다. 즉, 고질적인 환부를 도려내는 동력은 위기가 아니면 얻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위기는 말 그대로 위기이지만, 때에 따라서는 절대절명의 위기란 다른 말로 하면 절대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누군가는 큰 병에 걸리는 사태에서 넋을 놓지만 누군가는 나쁜 습관을 고치는 기회로 삼기는 것과 비슷하다. 위기를 ‘멘탈붕괴’로 맞이할 것인가 아니면 변화의 동력으로 삼을 것인가는 철저하게 잠재된 그 사람이나 국가의 역량에 달려 있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려면 국가나 조직이 인재를 키우고 있어야 한다. 위기의 순간에 2007년 미국은 오바마를 선택했고, 1997년 한국은 김대중을 선택했다. 미국에서 향후 몇 세기 동안 불가능해 보였던 흑인 대통령이 당선된 것이나, 역시 쉽지 않아 보였던 대권 도전 4수의 전라도 출신 대통령이 한국 대통령으로 당선된 맥락은 ‘금융위기’가 아니면 이해하기 어렵지만, 한국과 미국의 국가적 역량이 분명히 작동하고 있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김대중 정권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평가가 가능하겠지만, 위기의 한국 경제의 펀더멘탈을 바꿔 놓은 것과 불안정한 남북관계를 정상화시킨 것은 높은 평가를 받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차별 없는 세상은 불공평하다’는 것은 내 책의 일관된 주제다. 괜찮은 보수는 차별 없는 세상이 최선이라고 말한다. 어쩔 수 없이 경쟁을 강조하게 된다. 경쟁은 차별을 없애는 현실적으로 가장 강력한 힘이며 이론적으로 거의 유일한 힘이기 때문이다. ‘괜찮은’이라는 형용사를 붙인 이유는 차별 없는 세상이 완벽하진 않지만 문명과 역사의 진보이기 때문이다. 반면, 괜찮은 진보는 불공평하지 않은 세상이 최선이라고 말한다. 필연적으로 복지를 강조하게 된다. 역시 ‘괜찮은’이란 수사를 단 이유는 속도제한 없이 무제한의 속도로 질주하는 고속도로에서 누군가는 상대적으로 덜 안전하고 덜 빠른 자동차를 탈 수 밖에 없다면 그들을 보호해줘야 한다는 생각이 윤리적으로 타당할 뿐 아니라 누구나 경제적인 위험에 노출 될 수 밖에 없는 자본주의 시스템하에서 합리적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보수의 논리대로 생산성이 높은 경제만을 추구하다 보면, 시간이 흐르면 필연적으로 정치적 반동을 경험할 수 밖에 없다. 경제적 경쟁은 사적 재산권을 전제로 무한대로 이루어지지만, 민주주의의 기본 전제는 1인 1표이기 때문이다. 가난한 사람이나 부자인 사람, 배운 사람이나 못 배운 사람, 경쟁에서 낙오된 사람이나 경쟁에서 이긴 사람이 모두 1표씩 갖는 정치상황하에서 지나친 불공평의 심화는 정치적 퇴행의 위험을 심화시킨다. 정치적 격변은 비록 그 가능성은 높지 않아도 사회적 근간을 뒤흔들 수 있기 때문에, ‘괜찮은’ 보수라면 장기적인 시각을 갖고 미래를 바라보고 사회의 불공평에도 관심을 갖는다. 반면, 낮은 생산성이 지속되면 사회적 불공평을 해소할 영속적 재원을 마련하는 것이 불가능 하기 때문에 ‘괜찮은’ 진보라면 차별을 해소하고 생산성을 끌어 올리는 일에도 시선을 뗄 수 없다. 즉, 지금 정치의 핵심은 차별도 없애고 불공평도 줄이는 것이며, 그것이 가능하다고 믿고 실현할 수 있는 정치인을 선택하는 것이 정치적 선택의 핵심이어야 한다.
문제는 차별과 불공평을 동시에 줄여가는 방법이 ‘지성’과 ‘양심’을 동시에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지성’만 갖고 있다면 차별을 해소하되 불공평에 관심을 가질 장기적 관점은 갖기 어려울 것이다. ‘양심’만 가지고 있다면, 불공평을 해소할 역량은 계속 의심받을 것이다. 이러한 시대사적 요구를 가장 잘 따라가고 있는 것은 현재의 미국이다. 오바마의 개혁 정책은 완벽하지는 않지만, 시대정신의 구현에 충실하다. 반면, 20년 전 위기를 맞았던 일본이나 지금 위기를 맞고 있는 유럽의 경우는 이런 시대정신의 이해나 구현에 무능하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것이 어려운 이유는 짧은 시간 안에 옳은 결정을 내려야 하기 때문이다. 일본은 계속해서 기회를 놓치고 있고, 유럽도 점점 어두운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려고 하고 있다.
유럽과 일본과 대조적인 미국의 모습을 보면서 한국의 정치 지도자라면 고민해야 하는 것은 10년 뒤 세계의 모습과 이에 대한 대응이다. 이미 유일한 제국이면서 다시 강화되는 ‘미국의 시대’에 주한 미국 철수가 당의 정강인 것은 어떤 관점에서 보아도 시대착오적이다. 그런 정당과의 정치적 연대 역시 얻을 수 있는 것보다는 잃을 수 있는 것이 훨씬 많다. 톨스토의의 단편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보면 미래를 예측하지 못하는 것이 인간의 숙명이라는 말이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예측을 게을리 할 수 없다. 우리가 미래를 예측하는 이유는 잘 준비하기 위해서지 예언자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다. 리더라면 ‘최후의 예측자’가 되어야 하고, 리더쉽의 본질은 예측에 바탕을 둔 대응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현대 사회는 예수가 재림해도 윤리적으로 깔끔하게 사회적 사안을 해결 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미국의 ‘오바마케어’에 대해서 예수는 무엇이라고 할 것인가?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 편을 들어 찬성할 것인가 아니면 재정 적자가 심화될 재정을 걱정해 반대할 것인가? 경제 위기 상황에서 부자들에 대한 세금 감면에 대해서 예수는 무엇이라고 할 것인가? 단기적 부양정책으로서 찬성인가 사회적으로 불공평하기 때문에 반대인가? 예수는 좌파에게 투표할 것인가 아니면 우파에게 투표할 것인가 아니면 기권할 것인가? 이처럼 아무리 현자라도 사회적 현안에서 판단이 쉽지 않은 이유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많은 사안들에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현대 정치의 관점에서 한국 정치를 보면 경제 현안과 외교 현안 그리고 대북 현안과 교육 현안은 별개의 사안들이 아니라 복잡하게 연결되어 얽혀있다. 이 모든 사회 경제적 사안들을 잘 이해하고 있지 않으면 예측할 수도 대응할 수도 해결할 수도 없다. 그건 무식한 지도자가 참모만 잘 쓰면 되는 시절은 이미 끝났다는 걸 의미한다. 그런 면에서 지금의 여당과 야당은 모두 제대로 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듯 보인다. 공부가 충분치 않은 것이다. 어떤 당의 엉터리 주장을 반박하고 입증할 역량이 다른 당에도 없다. 지금 현안인 가계대출 문제, 서비스업의 낮은 생산성, 자영업자 문제, 사교육 문제, 육아와 복지 문제, 북한 문제들은 유기적으로 얽혀 있지만 어느 당도 그에 대한 진정성 있는 고민을 하고 있거나 설득력 있는 해법을 제시하는 것 같지 않다.
재미있는 것은 이번 선거의 결과와 상관없이 다음 2017년 대선을 보면 ‘춘추전국시대’가 도래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는 것이다. 3김 시대가 저물고 인터넷의 시대가 찾아온 후, 대중이 갈망하는 대형 정치인의 발굴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제대로 공부한 정치인에게 2012년 이후의 세상은 의외의 '무주공산'일 수 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역시, ‘지성’과 ‘양심’간의 균형을 이루는 것이 최선의 철학이자 전략이라는 것이다.

마지막에서 2번째 문단에 "그런 면에서 지금의 여당과 야당은 모두 제대로 된 준비가 되어 있은 듯 보인다."에서 아마 '되어 있지않은 듯'이 '되어 있은 듯'으로 오타가 난것같습니다.
ReplyDelete항상 글 잘 읽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미국 보험회사들은 상당히 당황스럽겠네요 우린 국영보험보다 서비스 질이 더 좋다라고 마케팅하겠지만 가격경쟁력은 어떨런지...
ReplyDelete미국 재정적자 얘기 들을 때마다 생각나는 거지만 no more tax라고 외치시던 그 분만 아녔어도...
bankertrust입니다.//
ReplyDelete말씀하신대로 이제는 1국의 경제사회현상 중 순수하게 자국내 상황이 원인인 경우는 거의 존재하지 않습니다. 내 집값이 과거 왜 올랐는지, 지금 왜 내리는지, 대출금리가 왜 오르는 지 내리는지, 취직이 왜 이리 힘들어졌는지, 20년전에도 하루 일당 8만원인 노가다가 지금도 8만원인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상당히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경제, 사회학적 지식이 필요합니다.
불행히도 우리사회를 변혁시키겠다는 좌파 정치인이나 좌파성향의 시민들중 현대 자본주의와 국제무역 및 경제에 대한 대략적인 이해라도 가진 사람들을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그쪽 동네에서는 매우 유연하다고 하시는 노회찬씨 조차도 우연히 몇 시간 얘기를 해본 결과, 국회의원으로는 모르겠지만, 사회를 이끌어갈 지도자 수준의 안목은 절대 아니셨습니다. "진보"자가 들어간 정당인들의 수준은 그야 말로 "안습"과 "맨붕"수준이고요. 현시대의 보통 국민들보다도 못한 수준의 현실인식 능력...
현실 정치인들중에서 현대 사회에 대한 총체적 능력과 국제감각을 가지고, 그것을 추진할 정치적 자산을 갖춘 사람은 이제는 고인이 된 DJ와 노무현 뿐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노무현에 대해서는 집권기간 동안 많은 비난과 폄하가 있었지만 저는 적어도 우리사회가 다른 국가들보다 훨씬 더 여유를 가지고 복지정책과 분배에 대해 고민하고 전세계적인 금융위기에 대해 대처할 수 있는 사회적 자원을 보존(안정적인 거시운용, 보수적인 재정정책)했다는 점에서 누구 보다도 높은 평가를 내립니다. 그리고 그 평가가 저만의 아집이 아니라는 점은 과거 집권했던 정치인중 노무현의 직계 사람들만이 적어도 현실 정치에서 차기의 가능성을 가진 사람들(문재인, 안희정, 김두관 등)로 생존할 수 있다는 것이 그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YS나 DJ조차 그들 직계 정치인들의 한계는 매우 극명했죠)
과거 Hubris님은 참여정부가 권력 재창출에 성공하지 못했단 이유로 실패한 정부로 규정하셨지만, 세월이 지나며 그 평가는 점점 달라져 왔고, 앞으로도 달라질 것입니다.
공자는 평생 식읍을 가진 대부로서 정치에 참여하고 싶어했던 자신의 꿈을 결코 이룰 수 없었지만 사후 그의 명성으로 자신의 꿈보다 훨씬 높은 자리에 올라갔습니다.
노무현에 대한 평가 역시 그의 직계 정치인들의 현실 정치적 위치와 현실 정치의 낮은 수준이 그를 더 높은 자리에 올릴 거라고 믿습니다.
윗글에 말씀하신 현안사항에 대해 총체적이고 입체적인 인식을 가지며, 그것을 실천할 정치적 자산을 보유하는 정치인이 나오기를 희망해 봅니다.
미국에 살고있는 로리입니다.
ReplyDelete한국에 계시면서도 미국의 상황을 상당히 정확히 궤뚫고 계시군요. 놀랍습니다.
제가보기에도 미국 의료체계의 문제는 이익집단(특히 보험회사)에 의해 시스템이 좌지우지 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오바마케어 이후의 상황은 아무래도 저소득층이 주로 이용하게 될 저가보험이 많아질텐데, 이경우 저가보험의 coverage는 지금까지의 보험보다 훨씬 작아질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서 또다른 문제 (보험이 꼭 필요한 비싼 치료에 대해서 오히려 보험의 혜택을 못보는)가 야기될 거라고 하네요.
네번째 문단 ('2007년부터'로 시작되는)에 '베어즈 스턴'이라고 쓰셨는데.. bearsterns의 오타인가요 아니면 bear's stun 이라는 일종의 언어유희인가요...? (오타라면 수정 후 댓글은 지우셔도 됩니다~)
ReplyDelete올해 개인적인 화두가 '수신(修身)'입니다. 그런데 이걸 해서 무엇을 이뤄야 하는가는 그냥 모호하게 놔두었는데, 이 글을 읽으니 명쾌해지네요.
ReplyDelete절대적 지성과 절대적 양심에 다다르지는 못하더라도 좀 더 지성적이고 좀 더 양심적인 삶을 만들어가야겠습니다. 나라는 안 다스리니까 그 정도면 되겠죠.^^
2017년에는 박원순 시장이 무난히 당선될 것 같습니다.
ReplyDeletebankertrust/
ReplyDelete네. 일리가 있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저는 재평가는 재평가라는 생각이 들고, 더 잘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안타까운 점이 더 많이 느껴집니다. 마치, 내 공부 열심히 하고 친구들도 잘 가르쳐준 우등생이 정작 자긴 시험에 떨어져 대학 못 간 느낌이에요. 대학 못 간걸로 그 학생에 대한 평가의 전부는 아니고, 그의 삶에 재평가가 이루어지겠지만, 역시 갈 수 있었던 걸 못 간 것에 대해서 아쉬움이 많습니다.
익명/
오타입니다. 수정할께요.
바다속사막/
감사합니다.
로리/
관심을 갖고 있는 이슈라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