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October 15, 2012

출간 후 한달

책이 나온지 거의 한달이 다 되어 가고, 주말에 강남 교보문고에서 소위 '저자 강연회'를 했다. 강연회의 컨셉을 설정하는 건 어렵진 않지만 그렇다고 간단하지도 않다. 어떤 청중이냐에 따라 다르고, 출판사의 입장과 저자의 입장도 다르기 때문이다. 책을 읽지 않고 블로그 글도 읽어보지 않은 잠재적 독자로서는 책의 대략적인 개념을 설명하는 강연이 좋을 것이다. 하지만, 책을 읽은 독자나 블로그에 자주 들어온 사람으로서는 그런 강연은 지루할 것이다. 이번 강연회는 블로그와 트위터에만 광고를 했고, 그래서 책에서 다루지 않은 이야기를 주로 하고 싶었다. 무엇을 이야기할 것인가 메모를 해서 갔는데, 역시 청충이 예상보다 많다보니 원래 의도한 "체계적이지 않되 편안한" 내용이 되기 보다는 "산만하면서 허전한" 내용이 된 느낌이 있다. 그래서 강연을 짧게 하고 질의/응답을 하는 것이 맞았다는 반성에 도달했는데, 뒷풀이에 오신 분들에게는 가능한 솔직하고 편안하게 이야기를 하려고 했다. 그러다 보니, 오후 4시반에 시작된 일정은 밤 11시가 조금 넘어 끝났다.

트레이딩을 하다보면,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를 갖고 있어도 돈을 버는 건 쉽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된다. 회사 돈으로 트레이딩을 하는 건 물론이고, 자신의 돈을 투자를 통해 늘리는 것 역시 쉽지 않은 일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갖고 있는 아이디어가 시간이 흘러 옳은 것으로 판명되면 우쭐하기도하고(거봐, 내 말이 맞지) 후회하기도(왜 사지 않았을까) 한다. 하지만, 투자에서 후회란 아무 짝에도 소용없는 일이고, 우쭐해봤자 인정하고 좋아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이런 종류의 부질없는 후회와 확신은 결국 인간의 삶에서 무한반복될 수 밖에 없다. 자신의 분석과 직관에 대한 확신이 얼마나 있는지는 사실 그 사람의 행동과 실천에서 밖에 확인될 길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깨달음과 각성이 강렬하고 클수록 그에 따른 실천이 이루어져야만 그게 맞고 가치있는 것인지 아닌지 알게 된다. 애플의 미래를 확신한다면 애플이 200불일 때 사야지만 그 믿음이 맞는지 알 수 있다. 지금도 애플의 미래를 확신하면서 630불에서 사지 않으면 그 믿음이 얼마나 강한 강도인지 확인할 길이 없다. 만약 사랑은 무조건적이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 있다면, 무조건적인 사랑을 해보지 않고서는 그것이 가치 있는 것인지 혹은 불가능한 것인지 혹은 또 다른 함의가 있는 것인지 깨닫기 어렵다. 반대로 섹스가 곧 사랑이라고 믿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관계를 추구해보지 않고서는 그것이 의외로 허무한 것인지 아니면 원래 생각한대로 본질적인 것인지 알 수 없다.

자신만의 트레이딩 비법을 발견한 사람도 마찬가지다. 과거의 데이타를 통해 우리는 그 트레이딩의 신뢰성을 확인해 볼 수 있지만, 그 신뢰성이 미래에 수익으로 구현된다고는 누구도 확신할 수 없다. 막상 포지션을 갖게 된 트레이더는 누구도 공포와 탐욕의 감정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하지만, 그 비법의 완전성이 훼손될까 두려워 포지션을 가지 않는다면 그 트레이더는 영원히 "내가 발견한 트레이딩 비법"이라는 허상 속에서 살게 된다. 본인은 완벽한 비법을 만들었는지 몰라도, 아무 것도 달라지는 것은 없는 것이다. 따라서, 깨달음이 거대하고 확실할수록 우리는 그걸 실천에 옮겨서 옳은지 틀린지, 무엇이 옳고 잘못되었는지 검증받아야만 한다. 하지만, 전향적이고 도전적인 의사결정을 내리지 않으면서도 그런 경험을 확보하는 것은 극히 어려운 일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자신이 가고 싶은 대학을 가기 위해 지금의 즐거움을 희생하는 것보다 자신이 갈 수 있는 대학을 간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그렇지 않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사귀고 싶은 사람을 만나기 위해 여러가지 노력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사귈 수 있는 사람을 사귄다. 또 어떤 사람은 자신이 갖고 싶은 직업을 얻기 위해서 노력하기 보다는 자신이 갈 수 있는 직장을 골라서 간다. 이런 성향의 차이는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대단한 차이를 만들어 낸다. 도전과 성취와 좌절이 끊이지 않는 오욕의 인생을 사는 사람은 '작지만 확실한 행복'보다는 '남다른 생각과 경험'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어떤 사람은 그 생각과 경험을 단순한 일반화로 끝내버리고, 어떤 사람은 다른 사건이나 사안을 체계적으로 이해하는 출발점으로 삼는다.

주관적인 경험을 체계적인 이해와 객관화로 바뀌기 위해서는 특별한 방식이 필요하다. 나는 그런 면에서 경제학이 유용한 방법론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경제학 교과서를 열심히 읽기 시작한다고 해도, 심지어 미국의 유명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얻는다고 해도, 누구나 그런 관점을 갖게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나는 여러가지 주제를 다루고 있는 내 책이 유용하다고 노골적으로 혹은 암묵적으로 주장하고 있지만, 과연 내 주장이 어떤 함의를 갖고 있는지, 과연 그런 주장이 내 인생에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는, 각자가 논리적으로 따져보고, 삶에서 실천으로 검증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가급적 나는 강연회와 뒷풀이에서 내 개인적 체험을 공유하려고 노력했지만, 어떤 사람은 "아, 저 사람은 저런 경험 때문에 저런 편견을 갖게 됐구나"하고 느꼈을 것이고, 어떤 사람은 "아, 저 사람은 저런 계기로 저런 체험을 하게 되고 저런 깨달음을 얻게 됐구나"하고 느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극히 주관적인 경험을 공유하려고 했던 이유는 "전략의 수립과 실천도 철학적 뒷받침이 없으면 불가능하다"는 말을 (적어도 그 자리에 온 사람들에게만이라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즉, 아무리 '연애의 비법' 혹은 '투자의 비법' 혹은 '공부의 비법'을 전수받아도 그 비법의 실현은 각자의 수준에 따라서 철저하게 다를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 수준을 높이는 노력은 결국 전략의 수립과 실천의 과정에서 이루어지며, 나 자신도 예외가 아니다. 이로서 책을 낸 저자로서의 의무는 대충 마무리한 게 아닌가 생각한다. 이제 저자의 관점이 아닌 시장을 대하는 겸손한 일반론으로 돌아가야할 시점인 듯.

7 comments:

  1. 주말 강연회 무사히 잘 마치셨군요.
    꼭 참석하고 싶었는데 아쉽습니다.
    또 기회가 있겠지요.

    어제서야 책을 다 읽어 보았습니다. 조만간, 거창한 피드백이 아니더라도 간단한 느낌 정도 적도록 하겠습니다.

    좋은책 잘 읽었습니다. 다음 책도 기대됩니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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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강연말씀, 뒷풀이 모두 정말 즐거웠습니다~!
    오랫만에 그 어떤 강의보다 즐겁게 들으면서, 많은 것을 적어 내려가고 또 생각하게 됐습니다.
    우문이었을지 모르는 질문들에 좋은 대답도 정말 감사했고....많이 배운것 같습니다!!
    언젠가 또 다시 뵙고싶습니다. 아니, 실은 자주 뵙고 질문하고 싶네요...^^
    좋은 자리 마련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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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그날 강연회와 뒷풀이에 참가했던 사람입니다.
    김동조님이 어떤 분인지 조금 더 현실감 있게 알 수 있어서 좋았고, 앞으로 블로그 글을 읽을 때도 더 깊이 있는 이해를 하게 될 것 같습니다. 제가 해드린 것이라고는 블로그를 주변에 소개하고 책을 한 권 산 것일 뿐인데 '저자로서의 의무'까지 느끼면서 자신의 시간을 할애해 주신 점 정말 감사합니다. 저도 언젠가 도움이 되어 드릴 수 있도록 노력할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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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출판사 북돋움입니다. 50명 이내가 적정한 공간에 80명 이상이 참석했습니다. 강연회 후 책에 사인을 받은 분만 약 60명이었습니다.
    서서 들으신 분이 약 20명인데, 한 시간 반 동안 자리를 뜨신 분이 없고, 사인을 받기 위해 길게 줄서서 30분 이상 진행되는 모습에 서점 직원들도 놀라는 모습이었습니다.

    좁은 공간에 마이크 문제까지, 준비가 충실하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그래도 강연회가 성황이어서 뿌듯했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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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그날 아쉽게도 뒷풀이에는 참석하지 못했지만 좋은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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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저의 올해 가장 큰 기쁨은 휴브리스님의 블로그를 알게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사람의 행동에 집중하는 휴브리스님으로선 제 말을 믿지 않으실 수도 있겠습니다.

    본인의 장점이 Interpersonal skill인 것 같다 하셨지요. 그것은 소위 말하는 인간관계의 기술이라기보단 휴브리스님의 매력에 근거하는 게 아닌지 조심스레 분석해봅니다.

    이렇게 낯간지러운 글을 쓰는 이유는 앞으로도 좋은 글을, 그리고 지난 강연회와 같은 자리를 또 한 번 바라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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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여러분/
    강연회만 오신 분들, 뒷풀이도 오신 분들 다 감사드립니다. 배는 고팠지만 보람은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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