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션 영화의 진정한 묘미는 사람의 몸이 만드는 아름다움에 있다. '영웅'에서 이연걸과 견자단이 대결하는 장면은 정말 아름답다. 이연걸 액션이 비현실적인 아름다움이라면, 견자단 액션은 보다 현실에 가까운 아름다움이다. 개인적으로는 견자단의 액션을 훨씬 좋아한다. 이 비디오 클립처럼 백 명 가까운 적을 혼자 상대하는 장면을 말이 되게 찍는 건 정말 어렵다. 구로자와 아키라의 '칠인의 사무라이' 전에는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올드보이'에서 장도리 액션도 꽤 그럴 듯하게 찍은 장면이다. 현실세계에서 벽을 등지지 않고 견자단처럼 싸우는 것은 자살행위다. 그래도 상당히 리얼하다 보니, 보는 동안 내가 정말 견자단이 되는 듯한 감정이입을 가끔 경험한다. 신나게 패는 모습을 보다 보면 손에 땀이 흥건하다. 보면서 유치한 생각도 꽤 한다. 그게 바로 액션 영화의 묘미.
Thursday, June 28, 2012
Tuesday, June 26, 2012
마켓 업데이트
GDP가 230억불로 그리스 GDP의 10%도 안되는 키프로스가 구제금융 결정하고 EU 정상 회담에서 의미있는 결론을 보기가 어려워 보인다는 비관론으로 간밤 미국 주식은 1% 넘게 하락. 유럽 증시는 프랑스와 독일이 2% 넘게 하락. 키프로스 뉴스가 의미가 있었다기 보다는 시장이 메르켈에 대해서 정치적 결단을 촉구하는 압박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메르켈은 어제도 유로본드와 공동예금 보증방안이 잘못됐으며 역효과를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했다고. 하지만, 그녀가 계속 주장하는 감독이 강화된 정치연합, 재정주권이 할양된 재정통합은 독일을 경계하는 다른 국가들의 심정을 감안하면 현실성이 떨어진다. 웃기는 것은 유로 통합으로 가장 이득을 본 독일 국민의 55%가 유로에서 마르크로 돌아가길 원하고 있다는 것. 이미 단물을 다 빼먹었다고 생각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되면 독일은 유럽의 주적이 될 듯. 하지만, 시장이 독일을 압박하고, 압박당한 독일이 결단을 내린다면, 시장은 좀비같은 유럽 이슈에서 벗어나 좀 더 본질적인 이슈에 초점을 맞추게 될 것이다. 문제는 그게 언제일지 알기가 어렵다는 것. 그럼 무엇이 본질일까? 물론, 미국. 유럽의 둔화에도, 중국의 하드랜딩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미국 경제만 버텨준다면 세계 경제의 체감 성장은 그다지 나쁘지 않을 것이다. 미국 경제는 현재 기대와 우려가 다 있는데, 우려는 고용 회복이 기대만큼 빠르지 않다는 것. 하지만 기대는 드디어 주택시장의 회복이 가시화되고 있다는 것. 거의 모든 형태의 주택 가격 인덱스가 오르기 시작했고, 어제 나온 5월 신규주택판매는 전월대비 7.6%가 늘었다. 아마도, 여름이 되면 주택시장의 회복은 더 가속화될 것이다. 나는 고용도 속도는 느리지만 실업율 하락이 계속 진행될 걸로 본다.
좀비같은 유럽 이슈가 금융시장 전면에서 사라져주길 바라는 사람이 정말 많다. 그만큼 지긋지긋하다. 이번 주말에 예정된 유럽 정상회담에서 Bank Union에 대해서 결론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는 구체화된 진전이 보여야 할 듯. 그렇지 않으면 또 몇 주 동안 시장은 왕복 달리기를 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만들 것이다. 그런 시기에 몇 번 삽질을 하고 나면, 실제 랠리가 올 때 즈음에 상처 투성이가 되서 용감한 트레이딩을 하지 못할 것인데, 문제는 나 역시 예외가 아니란 것. 글로벌 경제의 열쇠를 쥐고 있는 건 유럽도 중국도 아닌 미국이란 생각이며, 유럽 이슈만 눈앞에서 진정되면 올해 말 주가는 연초에 생각했듯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유럽 위기로 인한 셀 오프를 매수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보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종목을 잘 골라야 할 것. 저평가 된 주식, 실적인 좋은 주식은 하반기 랠리에 더 잘 달릴 것이다. 추가 양적완화가 발표되는 시점이 미국 금리의 바닥이라고 생각해왔는데, 미국 연준은 추가 양적완화 대신에 Operation twist를 연장. 여러가지 여건상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본다. 채권시장의 긴장감도 서서히 높아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주식 시장에 비해서 채권시장의 방향은 좀 더 종잡을 수가 없는 것이 올해 장의 패턴이다. 너무 많은 불확실성이 정책과 정치에서 나오고 있어서 올해 금융시장은 난이도가 거의 최고 수준. 피로감이 높다.
좀비같은 유럽 이슈가 금융시장 전면에서 사라져주길 바라는 사람이 정말 많다. 그만큼 지긋지긋하다. 이번 주말에 예정된 유럽 정상회담에서 Bank Union에 대해서 결론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는 구체화된 진전이 보여야 할 듯. 그렇지 않으면 또 몇 주 동안 시장은 왕복 달리기를 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만들 것이다. 그런 시기에 몇 번 삽질을 하고 나면, 실제 랠리가 올 때 즈음에 상처 투성이가 되서 용감한 트레이딩을 하지 못할 것인데, 문제는 나 역시 예외가 아니란 것. 글로벌 경제의 열쇠를 쥐고 있는 건 유럽도 중국도 아닌 미국이란 생각이며, 유럽 이슈만 눈앞에서 진정되면 올해 말 주가는 연초에 생각했듯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유럽 위기로 인한 셀 오프를 매수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보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종목을 잘 골라야 할 것. 저평가 된 주식, 실적인 좋은 주식은 하반기 랠리에 더 잘 달릴 것이다. 추가 양적완화가 발표되는 시점이 미국 금리의 바닥이라고 생각해왔는데, 미국 연준은 추가 양적완화 대신에 Operation twist를 연장. 여러가지 여건상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본다. 채권시장의 긴장감도 서서히 높아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주식 시장에 비해서 채권시장의 방향은 좀 더 종잡을 수가 없는 것이 올해 장의 패턴이다. 너무 많은 불확실성이 정책과 정치에서 나오고 있어서 올해 금융시장은 난이도가 거의 최고 수준. 피로감이 높다.
Sunday, June 17, 2012
문득, 빅뱅과 동사서독
어제 저녁을 장인, 장모님을 모시고 이태원 ‘타코’에서 먹었다. 6인이 배불리 먹었는데 7만원 정도가 나왔다. 이태원의 상권은 점점 확장되어서 이제는 경리단 근처도 성시를 이룬다. 신사동 ‘가로수길’과 이태원 ‘경리단길’ 그리고 꼼데 가르송 길의 번성을 보면, 지금 사람들이 원하는 스타일의 문화가 무엇인지 대충 감이 잡힌다.
저녁을 먹고, 집 앞 노래방에 갔다. 백뱅의 ‘몬스터’와 샤이니의 ‘셜록’을 두 번씩 반복해서 부르는 9세와 7세 아동들의 모습은 재미가 있으면서도 무엇이 저 아이들을 저렇게 만드는지 생각하게 한다. 나오면서 아이들에게 빅뱅과 샤이니 중 누가 저 좋으냐고 물었더니, 주저 없무엇이 이 빅뱅이라고 대답한다. 아이들이 빅뱅에게 열광하는 건 멜로디의 아름다움과 세련된 사운드와 음악적 구조 때문이다. 처음 듣는 빅뱅 노래도 전주만 흘러도 그게 빅뱅인줄 알아 맞춘다. 아이의 음악적 감각보다는 빅뱅의 탁월함 때문이다. ‘몬스터’의 가사를 듣고 있으면, 가슴이 두근거리게 만드는 부분이 있다. 마치 왕가위 전성기의 영화를 보는 듯한 감수성이다.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사로잡혀 있는 시간과 상처와 사랑에 대한 감수성.
“겨울이 가고, 봄이 찾아오죠. 우린 시들고 그리움 속에 맘이 멍들었죠” (빅뱅, 블루)
“넌 알잖아 예전 내 모습을. 시간이 지나면 사라져 버릴텐데” (빅뱅, 몬스터)
왕가위가 한국에서 주목 받기 시작한 것은 ‘중경삼림’이었지만, 왕가위가 내 눈을 끈 것은 그의 초기 작품이었다. ‘몽콕하문’(As time goes by)의 유덕화와 장만옥의 조합은 참 멋졌다. 특히, 유덕화가 장학우 때문에 싸우기 직전 파란 색 렌즈로 바라보던 유덕화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참 냉정하면서도 뜨거웠고, 유덕화가 장만옥과 공중전화 부스에서 나누던 키스는 참 가슴 시린 명장면이었다. 그 키스 하나에 홍콩의 실존과 불안이 녹아 내렸다.
장만옥은 장국영에게 상처주기 위해서 장국영의 형과 결혼한다. 그 사이에서 낳은 아이는 말수가 없다. 바닷가에서 아이는 뛰어 논다. 장만옥은 다가오는 죽음에, 사라지지 않는 후회와 가슴저린 그리움에 모래위에 쓰러지고 만다. 파도는 끊임없이 몰려오고, 복사꽃은 매년 봄이 오면 변함없이 핀다.
그리고 장국영은 진짜 죽었다. 왕가위는 화양연화 이후 더 이상 걸작을 만들지 못한다.
저녁을 먹고, 집 앞 노래방에 갔다. 백뱅의 ‘몬스터’와 샤이니의 ‘셜록’을 두 번씩 반복해서 부르는 9세와 7세 아동들의 모습은 재미가 있으면서도 무엇이 저 아이들을 저렇게 만드는지 생각하게 한다. 나오면서 아이들에게 빅뱅과 샤이니 중 누가 저 좋으냐고 물었더니, 주저 없무엇이 이 빅뱅이라고 대답한다. 아이들이 빅뱅에게 열광하는 건 멜로디의 아름다움과 세련된 사운드와 음악적 구조 때문이다. 처음 듣는 빅뱅 노래도 전주만 흘러도 그게 빅뱅인줄 알아 맞춘다. 아이의 음악적 감각보다는 빅뱅의 탁월함 때문이다. ‘몬스터’의 가사를 듣고 있으면, 가슴이 두근거리게 만드는 부분이 있다. 마치 왕가위 전성기의 영화를 보는 듯한 감수성이다.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사로잡혀 있는 시간과 상처와 사랑에 대한 감수성.
“겨울이 가고, 봄이 찾아오죠. 우린 시들고 그리움 속에 맘이 멍들었죠” (빅뱅, 블루)
“넌 알잖아 예전 내 모습을. 시간이 지나면 사라져 버릴텐데” (빅뱅, 몬스터)
왕가위가 한국에서 주목 받기 시작한 것은 ‘중경삼림’이었지만, 왕가위가 내 눈을 끈 것은 그의 초기 작품이었다. ‘몽콕하문’(As time goes by)의 유덕화와 장만옥의 조합은 참 멋졌다. 특히, 유덕화가 장학우 때문에 싸우기 직전 파란 색 렌즈로 바라보던 유덕화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참 냉정하면서도 뜨거웠고, 유덕화가 장만옥과 공중전화 부스에서 나누던 키스는 참 가슴 시린 명장면이었다. 그 키스 하나에 홍콩의 실존과 불안이 녹아 내렸다.
하지만, 역시 나에게 왕가위 영화의 압권은 ‘동사서독’이었다. 영화적 완성도로 보면 ‘화양연화’가 한 수 위의 작품이다. ‘동사서독’은 정서의 과잉이 작품을 어떤 지점에 구속시켜 버린다. 하지만, 그 정서의 과잉이야 말로, 나를 중독시키는 요인이다. 시각적 아름다움과 폐부를 찌르는 대사 그리고 연기의 압권이 조화를 이루는 걸작이다. 거기에 나오는 인물들은 모두 김용의 소설에서 가져온 것이고 특별한 설명 없이 이름만으로 성격을 짐작할 수가 있다. 그래서 영화는 그들이 누군지 구질구질하게 설명하지 않고, 그들의 정서를 전달하는 데 독백을 남발한다. 그들은 모두 외로운 사람들이라, 독백하지 않으면 말할 곳이 없기도 하다. 그 영화의 압권은 역시 장만옥이 죽기 직전 바닷가에서 장국영을 생각하며 내뱉는 대사 한 마디.
그리고 장국영은 진짜 죽었다. 왕가위는 화양연화 이후 더 이상 걸작을 만들지 못한다.
Monday, June 11, 2012
마켓 업데이트 + 자영업에 대한 단상
주말 동안에 스페인이 구제금융을 신청했다. IMF는 스트레스 테스트 결과 스페인의 은행들의 자본금 확충을 위한 돈이 400억 유로(58.5 조) 정도라고 밝혔는데, 스페인이 신청한 자금은 최대 1천억 유로(대략 146조) 정도 된다. 미국의 TARP와 비슷한 FROB를 스페인에 설치하고 EFSF가 은행들에게 돈을 빌려준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FROB가 민간기구라 스페인 정부에게 돈을 직접 빌려줄 때 요구해야 하는 추가 긴축정책이나 각국 의회의 비준이 필요 없기 때문이다. 그리스, 아일랜드, 포르투갈 보다는 훨씬 좋은 조건의 구제금융이다. 스페인 입장에서는 그리스 사태로 레버리지를 행사할 수 있었덤 셈이다. EFSF가 향후 채권발행에서 선순위를 요구할 것이기 때문에, 스페인 금리가 기대처럼 많이 떨어지지는 않겠지만, 일단 스페인 문제를 일단락 하면서 마켓의 시선은 6월 17일 그리스 총선으로 간다. 하지만, 그리스 총선의 결과가 유로존 이탈일 가능성은 적어도 이번 선거에서는 거의 없을 것이기 때문에 단기적으로 주식시장이 반등할 가능성을 열어 놓는다.
주말 동안 나올 중국 지표가 예상보다 훨씬 나빠서 중국 정부가 금리를 인하했던 것이란 소문이 파다하게 돌았는데, 뚜껑을 열어보니 그렇지 않았다. 인플레이션 압력은 CPI에서 전망(3.2%)보다 낮은 3%였고, 산업생산은 예상치인 9.8%를 조금 하회한 9.6%였지만 전월의 9.3%보다는 좋아졌다. 이번 주 미국 지표는 산업 생산 말고는 없는데, 다음 주 무디스는 미국 은행들에 대해서 신용등급을 강등할 것이란 소문이 있다. 미국과 제조업의 시대가 오고, 유럽과 은행의 시대는 끝났다, 는 내 일관된 주장은 이런 이벤트로도 확인되지만, 사실 이런 사건은 지엽적이고 진짜 사정은 더 나쁘다.
주말 동안 자영업의 실태에 대해서 리서치를 하다 보니, 미안해서 글을 쓸 수 없을만큼 우울한 내용들 투성이다. 중국의 등장으로 공업인력이 붕괴되고, 엄청난 숫자의 사람들이 자영업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대략 600만명, 경제활동인구의 23%가 자영업을 하고 있다. 대부분의 자영업이 자본금 규모가 적다. 1억 정도의 자본금이라면 사실 자본비용을 거의 고려하지 않아도 될 정도 같은데, 그것 조차도 대출로 감당해야할 만큼 자영업자들의 펀더멘탈은 튼튼하지 않다. 당연히 신용이 낮다보니 낮은 금리로 돈을 빌리지 못한다. 취업이 어려운 사람이 자영업을 하지만, 취직시 임금 이상의 소득을 자영업을 통해 올리는 사람은 많지 않아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대기업들이 유통업과 음식사업에 진입하고 있는데, 대기업들의 시장 진입을 막을 방법이 없을 뿐 아니라 막는 것이 능사도 아니다.
600조가 조금 넘는 1금융권 가계 대출 중에서 100조가 이러한 영세 자영업자 대출이고, 2금융권으로 가면 더 많을 것이다. 가계는 가난한데, 기업은 돈이 많은 이런 상황은 안타깝고, 여러가지 문제를 일으키지만, 우리나라만의 현상은 아니다. 정부 마저도 돈이 없고 강한 기업들이 줄어드는 유럽의 쇠퇴는 가속화될 것이다. 미국 정부의 부채는 달러의 위상 때문에 큰 의미는 없지만, 미국 가계에 비하면 기업들의 사정은 정말 좋다. 기업들의 현금 보유상황은 지난 50년 이래로 가장 좋다. S&P500 기업들의 수익도 좋고, 이익 모멘텀도 좋다. 이렇게 대부분의 가계가 위축되고 많은 정부들이 곤란한 상황이기 때문에, 거시적으로 보면 앞이 잘 안 보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런 상황은 함의는 굉장히 단순하다. 10년 뒤에 보면, 부자들은 더 부자가 되어 있고,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해져 있을 것이다. 위기는 어떤 사람들에게는 자산을 싸게 살 수 있는 기회를 의미하는 것이고, 그들에게는 지금의 변화가 나쁘지 않다.
주말 동안 나올 중국 지표가 예상보다 훨씬 나빠서 중국 정부가 금리를 인하했던 것이란 소문이 파다하게 돌았는데, 뚜껑을 열어보니 그렇지 않았다. 인플레이션 압력은 CPI에서 전망(3.2%)보다 낮은 3%였고, 산업생산은 예상치인 9.8%를 조금 하회한 9.6%였지만 전월의 9.3%보다는 좋아졌다. 이번 주 미국 지표는 산업 생산 말고는 없는데, 다음 주 무디스는 미국 은행들에 대해서 신용등급을 강등할 것이란 소문이 있다. 미국과 제조업의 시대가 오고, 유럽과 은행의 시대는 끝났다, 는 내 일관된 주장은 이런 이벤트로도 확인되지만, 사실 이런 사건은 지엽적이고 진짜 사정은 더 나쁘다.
주말 동안 자영업의 실태에 대해서 리서치를 하다 보니, 미안해서 글을 쓸 수 없을만큼 우울한 내용들 투성이다. 중국의 등장으로 공업인력이 붕괴되고, 엄청난 숫자의 사람들이 자영업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대략 600만명, 경제활동인구의 23%가 자영업을 하고 있다. 대부분의 자영업이 자본금 규모가 적다. 1억 정도의 자본금이라면 사실 자본비용을 거의 고려하지 않아도 될 정도 같은데, 그것 조차도 대출로 감당해야할 만큼 자영업자들의 펀더멘탈은 튼튼하지 않다. 당연히 신용이 낮다보니 낮은 금리로 돈을 빌리지 못한다. 취업이 어려운 사람이 자영업을 하지만, 취직시 임금 이상의 소득을 자영업을 통해 올리는 사람은 많지 않아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대기업들이 유통업과 음식사업에 진입하고 있는데, 대기업들의 시장 진입을 막을 방법이 없을 뿐 아니라 막는 것이 능사도 아니다.
600조가 조금 넘는 1금융권 가계 대출 중에서 100조가 이러한 영세 자영업자 대출이고, 2금융권으로 가면 더 많을 것이다. 가계는 가난한데, 기업은 돈이 많은 이런 상황은 안타깝고, 여러가지 문제를 일으키지만, 우리나라만의 현상은 아니다. 정부 마저도 돈이 없고 강한 기업들이 줄어드는 유럽의 쇠퇴는 가속화될 것이다. 미국 정부의 부채는 달러의 위상 때문에 큰 의미는 없지만, 미국 가계에 비하면 기업들의 사정은 정말 좋다. 기업들의 현금 보유상황은 지난 50년 이래로 가장 좋다. S&P500 기업들의 수익도 좋고, 이익 모멘텀도 좋다. 이렇게 대부분의 가계가 위축되고 많은 정부들이 곤란한 상황이기 때문에, 거시적으로 보면 앞이 잘 안 보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런 상황은 함의는 굉장히 단순하다. 10년 뒤에 보면, 부자들은 더 부자가 되어 있고,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해져 있을 것이다. 위기는 어떤 사람들에게는 자산을 싸게 살 수 있는 기회를 의미하는 것이고, 그들에게는 지금의 변화가 나쁘지 않다.
Sunday, June 10, 2012
RE: 김연아와 사회적 불평등
김연아는 졸업을 하기 위해서 교생실습을 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김연아는 다른 학생들에 비해서 특혜를 받으며 졸업을 하긴 했으나, 그것은 학교의 배려였을 것이고, 김연아가 불법이나 편법을 썼을 가능성은 별로 없습니다. 그리고 그런 배려를 받은 것이 지금까지 김연아 하나뿐일 리도 없습니다. 따라서 김연아 입장에서 그런 특혜와 배려를 받는 것이 나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학교가 그런 배려를 한 것이 옳으냐? 학교 입장에서도 역시 옳은 선택일 수 있습니다. 학교의 이해관계에 부합하니까. 그렇다면 사회적으로 옳으냐? 그렇지는 않습니다. 사회의 장기적으로 건강해야 할 이해구조와 특히 사회적 평등을 훼손하니까요. 그렇다면 누군가 그런 사회적 맥락에 대해서 지적하는 게 좋으냐? 그렇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회적 불평등은 점점 악화될 테니까.
강용석이 아나운서에 대해서 한 발언이 사회적 문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강용석은 여론의 신랄한 비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강용석은 한나라당에서 쫓겨나야 했고 이번 선거에서 낙선했습니다. 공적인 지위에 있는 국회의원이 그런 발언을 한 것은 비록 사적인 성격이 있는 자리라 해도 부적절했습니다. 하지만, 그 발언을 들은 아나운서 협회가 강용석을 ‘집단 명예훼손’으로 고발, 고소함으로써 사태는 우습게 돌아갔습니다. 아나운서들이 자신을 언론인으로 생각을 하는지 안 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방송에 종사하는 자들이 타인의 발언을 문제 삼아 명예훼손으로 고발, 고소하는 것은 세계적으로 참 유례가 드문 일 입니다. 왜냐하면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최대한 확보하지 않으면 그들 자신도 언젠가 똑같은 처지에 놓여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같은 맥락으로 ‘PD 수첩’팀이 무죄판결을 받기 전까지 ‘조중동’과 보수언론은 이념이 문제가 아니라 언론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검찰이 아닌 ‘PD 수첩’팀의 편이 되는 게 옳았지만 그러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방식대로라면, 진보 정권이 들어서 비슷한 사안으로 조중동을 명예훼손으로 고발, 고소할 때 그들을 지지해줄 사람은 줄어들게 됩니다. 강용석은 결국 민사에서는 무죄, 형사에서는 유죄라는 이상한 상황에 놓였고, 지금도 재판은 진행 중입니다. 재판의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상관없이, 그 소송은 없어야 했고, 형사재판 역시 무죄가 나오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표현에 자유’에 대해서 사회의 자정에 맞기지 않고, 이런 식으로 법원의 판결을 묻는 것은 본인이 이 땅의 독재자가 아닌 이상 현명한 일이 아닙니다. 결국 강용석은 최효종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는 ‘쇼’를 통해 자신이 처한 상황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지 알려야 했습니다. 강용석은 최효종에 대한 소를 취하했지만, 강용석의 말과 최효종의 말은 무엇이 다른지 어떻게 다른지 매번 법원에 가서 물어야 한다면 참 비극적입니다.
김연아는 황상민을 고소했습니다. 김연아는 다른 사람들처럼 사실을 해명할 방법이 제한되어 있는 사람도 아니고, 황상민이 인터넷에서 익명으로 김연아를 비난했던 것도 아닙니다. 황상민의 발언이 무례하고 사실에 부합하지 않을 수 있지만, 사회적 맥락에 닿아있던 발언이라면, 김연아로서는 발언의 맥락을 수용하면서 다양한 경로를 통해서 사실을 밝히는 것이 옳았습니다. 그리고 그러는 편이 김연아 자신을 위해서도 좋았을 겁니다. 하지만, 김연아는 그런 방법을 택하는 대신 황상민을 고소했고, 사과를 한다면 고소를 취하하겠다는 식의 태도를 취했습니다. 22살의 김연아가 그런 행동을 취할 수 있는 것은 물론 김연아가 젊긴 해도 돈과 조직이 있기 때문입니다. 김연아가 황상민을 고소해도, 설령 이 소송이 황상민에게 민사상 책임이 없는 것으로 결론이 나도, 김연아로서는 가진 것에 비해서 잃을 것이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황상민으로서는 번잡스럽고 신경 쓰이는 일입니다. 대응을 위해서 변호사를 선임하고 재판을 준비해야 하는 일은 돈과 시간이 듭니다. 이런 일은 교수인 황상민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라면 더 힘들고 번잡하며 고통스러운 일일 수 있습니다. 이런 일이 몇 번 반복되면, 김연아와 사실 관계를 다투어야 하는 일이 아니라, 김연아가 잘못한 일에 대해서도 우리는 김연아에 대해서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없게 됩니다. 김연아의 이러한 부와 권력은 사실 대중의 사랑으로부터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상황의 전개는 부조리합니다. 사실 이러한 오만한 모습은 김연아만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힘과 권력을 가진 사람은 여론의 견제를 받지 않으면 누구나 이런 태도를 취합니다. 사실의 여부와 상관없이 일단 ‘PD수첩’팀이나 ‘미네르바’를 고발하고, 정치적 과정에 문제를 제기하는 사회적 힘은 망가집니다. “너희가 무죄라면 어디 법원에서 입증해보시지?”라는 논리를 사회가 수용하기 시작하면 정작 우리 자신이 그런 상황에 놓여지게 되면 아무도 도와주지 않게 됩니다. 설령 잘못한 것이 전혀 없고, 약간의 잘못이 있지만 의도에 비하면 극히 미미하다고 해도, 법원의 판결을 받기 전까지 개인과 사회가 입어야 상처는 너무 큽니다. 결국 ‘PD수첩’과 ‘미네르바’는 무죄판결을 받았지만, 가장 보수적인 법원에서 비로서 지켜지는 사회의 수준은 걱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김연아는 공연도 해야 했고, 광고도 찍어야 했고, 프로그램의 진행도 해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연아가 잠을 줄이고 놀라운 집중력을 발휘해서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면 놀랍고 존경스러운 일입니다. 그러지 않았을 것이란 것도 저를 비롯한 사람들의 막연한 편견일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김연아는 자신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나는 바쁜 와중에도 열심히 공부했고, 시험도 봤고, 좋은 성적을 거두었고, 아이들에게 내가 공부한 내용을 충분히 가르칠 수 있다고 말하면 됩니다. 김연아가 그렇게 진심을 갖고 말한다면 믿지 않을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만약, 공연도 해야 했고, 광고도 찍어야 했고, 프로그램도 진행해야 해서 바빴고, 하지만 학칙에 따라 졸업의 조건을 다 충족했으며, 교생실습은 졸업을 위해서 해야 했지만, 한번 얼굴 비추고 간 게 아니라, 성실하게 하고 있다면, 역시 그렇게 말하면 됩니다. 김연아는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여러 채널을 갖고 있습니다. 그녀가 그렇게 말을 했을 때, 물론 대중과 정치인과 학자들은 여전히 사회적 불평등을 감소시킬 방법을 찾아 지혜를 모아야겠지만, 적어도 김연아 개인을 비난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겁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대신, 김연아는 황상민을 고소했습니다. 저는 그 행동이 옳다고 생각하지 않고, 그것은 설령 황상민의 태도와 사실관계에 잘못이 있다고 해도 합리화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 늘 그래왔듯이, 함량 미달이거나 태도가 맘에 안 드는 댓글은 그냥 지웁니다. 다 읽지 않고 지우는 경우도 있습니다. 지난 2년 넘는 기간 동안 지운 댓글 보다 이 글 하나에 달려 지운 댓글이 더 많았네요.
강용석이 아나운서에 대해서 한 발언이 사회적 문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강용석은 여론의 신랄한 비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강용석은 한나라당에서 쫓겨나야 했고 이번 선거에서 낙선했습니다. 공적인 지위에 있는 국회의원이 그런 발언을 한 것은 비록 사적인 성격이 있는 자리라 해도 부적절했습니다. 하지만, 그 발언을 들은 아나운서 협회가 강용석을 ‘집단 명예훼손’으로 고발, 고소함으로써 사태는 우습게 돌아갔습니다. 아나운서들이 자신을 언론인으로 생각을 하는지 안 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방송에 종사하는 자들이 타인의 발언을 문제 삼아 명예훼손으로 고발, 고소하는 것은 세계적으로 참 유례가 드문 일 입니다. 왜냐하면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최대한 확보하지 않으면 그들 자신도 언젠가 똑같은 처지에 놓여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같은 맥락으로 ‘PD 수첩’팀이 무죄판결을 받기 전까지 ‘조중동’과 보수언론은 이념이 문제가 아니라 언론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검찰이 아닌 ‘PD 수첩’팀의 편이 되는 게 옳았지만 그러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방식대로라면, 진보 정권이 들어서 비슷한 사안으로 조중동을 명예훼손으로 고발, 고소할 때 그들을 지지해줄 사람은 줄어들게 됩니다. 강용석은 결국 민사에서는 무죄, 형사에서는 유죄라는 이상한 상황에 놓였고, 지금도 재판은 진행 중입니다. 재판의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상관없이, 그 소송은 없어야 했고, 형사재판 역시 무죄가 나오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표현에 자유’에 대해서 사회의 자정에 맞기지 않고, 이런 식으로 법원의 판결을 묻는 것은 본인이 이 땅의 독재자가 아닌 이상 현명한 일이 아닙니다. 결국 강용석은 최효종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는 ‘쇼’를 통해 자신이 처한 상황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지 알려야 했습니다. 강용석은 최효종에 대한 소를 취하했지만, 강용석의 말과 최효종의 말은 무엇이 다른지 어떻게 다른지 매번 법원에 가서 물어야 한다면 참 비극적입니다.
김연아는 황상민을 고소했습니다. 김연아는 다른 사람들처럼 사실을 해명할 방법이 제한되어 있는 사람도 아니고, 황상민이 인터넷에서 익명으로 김연아를 비난했던 것도 아닙니다. 황상민의 발언이 무례하고 사실에 부합하지 않을 수 있지만, 사회적 맥락에 닿아있던 발언이라면, 김연아로서는 발언의 맥락을 수용하면서 다양한 경로를 통해서 사실을 밝히는 것이 옳았습니다. 그리고 그러는 편이 김연아 자신을 위해서도 좋았을 겁니다. 하지만, 김연아는 그런 방법을 택하는 대신 황상민을 고소했고, 사과를 한다면 고소를 취하하겠다는 식의 태도를 취했습니다. 22살의 김연아가 그런 행동을 취할 수 있는 것은 물론 김연아가 젊긴 해도 돈과 조직이 있기 때문입니다. 김연아가 황상민을 고소해도, 설령 이 소송이 황상민에게 민사상 책임이 없는 것으로 결론이 나도, 김연아로서는 가진 것에 비해서 잃을 것이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황상민으로서는 번잡스럽고 신경 쓰이는 일입니다. 대응을 위해서 변호사를 선임하고 재판을 준비해야 하는 일은 돈과 시간이 듭니다. 이런 일은 교수인 황상민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라면 더 힘들고 번잡하며 고통스러운 일일 수 있습니다. 이런 일이 몇 번 반복되면, 김연아와 사실 관계를 다투어야 하는 일이 아니라, 김연아가 잘못한 일에 대해서도 우리는 김연아에 대해서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없게 됩니다. 김연아의 이러한 부와 권력은 사실 대중의 사랑으로부터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상황의 전개는 부조리합니다. 사실 이러한 오만한 모습은 김연아만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힘과 권력을 가진 사람은 여론의 견제를 받지 않으면 누구나 이런 태도를 취합니다. 사실의 여부와 상관없이 일단 ‘PD수첩’팀이나 ‘미네르바’를 고발하고, 정치적 과정에 문제를 제기하는 사회적 힘은 망가집니다. “너희가 무죄라면 어디 법원에서 입증해보시지?”라는 논리를 사회가 수용하기 시작하면 정작 우리 자신이 그런 상황에 놓여지게 되면 아무도 도와주지 않게 됩니다. 설령 잘못한 것이 전혀 없고, 약간의 잘못이 있지만 의도에 비하면 극히 미미하다고 해도, 법원의 판결을 받기 전까지 개인과 사회가 입어야 상처는 너무 큽니다. 결국 ‘PD수첩’과 ‘미네르바’는 무죄판결을 받았지만, 가장 보수적인 법원에서 비로서 지켜지는 사회의 수준은 걱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김연아는 공연도 해야 했고, 광고도 찍어야 했고, 프로그램의 진행도 해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연아가 잠을 줄이고 놀라운 집중력을 발휘해서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면 놀랍고 존경스러운 일입니다. 그러지 않았을 것이란 것도 저를 비롯한 사람들의 막연한 편견일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김연아는 자신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나는 바쁜 와중에도 열심히 공부했고, 시험도 봤고, 좋은 성적을 거두었고, 아이들에게 내가 공부한 내용을 충분히 가르칠 수 있다고 말하면 됩니다. 김연아가 그렇게 진심을 갖고 말한다면 믿지 않을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만약, 공연도 해야 했고, 광고도 찍어야 했고, 프로그램도 진행해야 해서 바빴고, 하지만 학칙에 따라 졸업의 조건을 다 충족했으며, 교생실습은 졸업을 위해서 해야 했지만, 한번 얼굴 비추고 간 게 아니라, 성실하게 하고 있다면, 역시 그렇게 말하면 됩니다. 김연아는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여러 채널을 갖고 있습니다. 그녀가 그렇게 말을 했을 때, 물론 대중과 정치인과 학자들은 여전히 사회적 불평등을 감소시킬 방법을 찾아 지혜를 모아야겠지만, 적어도 김연아 개인을 비난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겁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대신, 김연아는 황상민을 고소했습니다. 저는 그 행동이 옳다고 생각하지 않고, 그것은 설령 황상민의 태도와 사실관계에 잘못이 있다고 해도 합리화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 늘 그래왔듯이, 함량 미달이거나 태도가 맘에 안 드는 댓글은 그냥 지웁니다. 다 읽지 않고 지우는 경우도 있습니다. 지난 2년 넘는 기간 동안 지운 댓글 보다 이 글 하나에 달려 지운 댓글이 더 많았네요.
Friday, June 08, 2012
김연아와 사회적 불평등
스물 두 살의 김연아가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인 황상민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교생 실습이 쇼"라고 한 황상민의 말 때문이다. 그 뉴스를 들으니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인터넷 상에서의 여론이 김연아에게 우호적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니 기분이 더 좋지 않았다. 물론 김연아로서는 그런 말을 들어야 하는 게 억울하고 기분이 나빴을 수 있다. 김연아는 법을 어긴 적이 없고 스스로 잘못한 적이 없다. 하지만, 김연아는 고등학생을 가르칠 만큼 학교에서 공부를 한 적이 없다. 다른 학생처럼 출석을 하고, 시험을 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는 그녀가 졸업할 수 있게 배려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김연아의 교생 실습이나 입학과 졸업 여부에 비판할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녀에 관한 모든 것이 사회적 맥락과 닿아 있기 때문이다. 하물며, 발끈해서 그 발언을 한 대학교수를 명예훼손으로 고발하는 것은 도를 넘는 일이다. 황상민의 발언은 김연아를 향해 있는 것 같지만 실은 김연아를 입학시키고, 졸업시키고, 그녀에게 돈과 명예를 제공한 사회를 향한 것이기 때문이다. 양식이 있는 자라면, 사회적 맥락이 닿아 있는 사람의 발언을 명예훼손으로 고발하는 것은 해서는 안 될 일이다. 그런 식이라면, 우리는 도대체 무슨 말을 할 수가 있을까? 게다가, 그녀는 대중의 반응과 인기로 먹고 사는 대중 스타다. 그녀와 그녀를 둘러싸고 있는 회사는 오만하고 건방지며 무식하다.
학생을 선발할 선발권이 100% 대학에게 있다고 가정하자. 그리고 세계 최고 수준인 그 대학에서 학생을 선발할 전권은 당신에게 있다고 하자. 시험성적이 좋든 나쁘든, 얼굴이 잘 생겼든 못 생겼든, 여자든 남자든,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당신은 원하는 학생을 마음대로 뽑을 수 있다. 지금 미국의 대학 모습이기도 하다. 당신은 과연 어떤 학생을 뽑겠는가? 스포츠 스타인 김연아를 뽑겠는가 안 뽑겠는가? 소녀시대 제시카를 뽑겠는가 안 뽑겠는가? 빅뱅의 G 드래곤을 뽑겠는가 안 뽑겠는가? 시험을 잘 본 순서대로 학생을 뽑겠는가 아니면 각종 기록을 보면서 학생의 집안 배경과 성장 환경도 감안해서 뽑겠는가? 성적으로 보면 올 수 없는 재벌집 아들이 학교에 30억쯤 기부를 한다고 한다. 뽑겠는가 안 뽑겠는가?
신념이나 철학을 내세우지 않고 철저하게 학교의 이익을 대변해야 하는 건 나의 도덕적 의무다. 그게 사회적으로 어떤 영향을 가져올지에 상관없이 학교에 이익에 부합하도록 학생 선발권을 행사하는 것이 나의 윤리적 행동이라는 뜻이다. 책임 윤리와 상관없는 상황윤리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나는 ‘수능’이나 ‘SAT’ 처럼 표준화된 학력평가검사만으로 학생을 뽑지 않을 것이다. 학력평가점수가 보여주는 인간의 면모는 극히 단면적이기 때문이다. 학력평가점수와 사회적 성취와 더 높은 상관관계를 보이는 것이 있다. 노벨상 수상자인 시카고 대학의 경제학자 제임스 헤크만이 연구한 바에 따르면, 수능이 보여주는 인지적 능력보다 더 사회적 성취와 높은 상관관계를 보이는 것은 인성적 자질과 같은 비인지적 능력이다. 예를 들어, ‘성실성’은 임금과 사회적 성취와 높은 상관관계를 보인다. 그렇다면, 이러한 비인지적 능력을 평가할 방법이 있을까?
비인지적 능력은 안타깝게도 학교에서 교육되기 어렵다. 비인지적 능력의 차이는 보통 3세 정도부터 나타나는데, 비인지적 능력이 사회적 성취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알기 쉽지 않고, 안다고 해도 정확히 무엇을 아이들을 위해 해줘야할지 알기도 어렵다. 무엇보다 제한된 학교의 자원을 생각할 때 비인지적 능력을 올리는 교육을 쉽게 하기도 어렵다. 그러다 보니 비인지적 능력에 대한 교육을 할 수 있는 것은 부모를 비롯한 가정뿐이다. 우선 시간이 있어야 하고, 교육하는 사람 자신이 비인지적 능력이 높아야 하기 때문이다. 비인지적 능력은 사회적 성취와 높은 상관관계를 갖기 때문에, 그런 능력이 있는 사람은 대개 사회적 지위가 높고 소득 수준이 높다. 따라서, 비인지적 능력의 차이를 줄이려는 사회적 고려 없이 비인지적 능력을 학생선발에 감안하면 돈이 많고 사회적 지위가 높은 집의 자식들이 대학에 들어가기 훨씬 쉬워진다. 언뜻 보면 대학이 자신의 수준을 떨어뜨리는 것 같지만, 미국의 명문대학이 아들 부시를 기꺼이 입학 시키는 것도 이러한 합리적 근거가 있다. 그리고 결국 그는 대통령이 되는 의외의 결과를 만들었다. 미국에서도 아들과 아버지가 대통령이 되는 건 역사적으로 전례가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내가 이런 식으로 집안이 좋고 돈이 많은 자식들만 합격시킬까? 물론 그렇지 않을 것이다. 나는 공부를 잘 하는 최고의 수재와 천재들도 뽑을 것이다. 그런 학생들이 학교에 제공하는 지적인 분위기, 학문적 성취, 그리고 사회에서의 성공은 학교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스포츠 스타와 연예인도 뽑을 것이다. 나탈리 포트만도 뽑을 것이고, 제레미 린도 뽑을 것이며, 요요 마도 뽑을 것이다. 장영주도 지원만 한다면 기꺼이 뽑을 것이다. 학교를 다채롭게 만들고 학생들에게 풍부한 자극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학교의 지성적 수준과 맞지 않는 지적 수준을 보이면 시험을 보는 과정에서 떨어져 나갈 것이다. 이런 식으로 사람을 뽑고 나면 미국 대학의 모습이 된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학생을 선발하다 보니, 미국의 사회적 불평등은 교육이란 제도를 통해서 더욱 견고해지고 심각해졌다. 머리가 똑똑하고 성적이 좋아도, 비슷한 수준의 부자 집 자식보다 대학에 들어가기가 훨씬 어려워진 것이다. 그래서 적극적으로 도입한 것이 미국의 대학선발고사인 ‘SAT’다. 우리나라가 대학선발고사인 학력고사만으로 학생들을 선발하다가 다양한 선발기준이란 이름으로 자의적 선발권을 학교에 준 것과는 달리, 미국은 자의적으로만 학생을 선발하다가 표준적인 학력평가시험 점수를 선발의 기준으로 삼기 시작한 것이다. 사회적 불평등이 악화되는 것을 더 이상 간과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대학 자신의 이해를 최대한으로 올리려는 대학과 사회적 불평등을 줄이기를 원하는 사회(대중)간에는 적절한 긴장관계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대학은 자신의 이해관계만을 적극적으로 추구하게 된다. 예컨대, 고려대학교의 입장에서는 한 두 명의 김연아를 받아들이는 것은 학교의 수준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 반면, 자신의 명성과 이름을 알리는 데는 도움이 된다. 나탈리 포트만이 하버드를 진학해서 하버드가 유명해진 것은 아니지만, 유명한 하버드가 나탈리 포트만이 여러 학교 중에서 하버드를 선택함으로써 조금이라도 더 유명해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미국은 하버드 말고도 수십 개의 명문 대학이 있다. 그러나 한국처럼 소위 3개의 대학만 명문 대학 취급을 받는 나라에서 김연아 류의 학생 선발이 빈발해지면 필연적으로 사회적 불평등은 악화된다. 학교가 뽑을 수 있는 학생의 수는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고, 김연아와 같은 스타가 별 어려움 없이 학교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은 이미 다른 기준으로도 많은 학생들이 상대적으로 열등한 학업 성취도를 갖고도 대학에 쉽게 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은 돈이 많고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의 자식들이 훨씬 유리하다. 김연아처럼 본인이 돈이 많고 사회적 지위가 높은 경우는 말할 것도 없다.
제임스 헤크만은 사회적 불평등을 줄이기 위한 교육 방법과 교육제도의 고안을 위해 연구를 하고 있다. 그는 성실함, 집중력, 온순함과 같은 좋은 인성적 성품이 생각보다 빠른 시기부터 큰 격차를 보여준다는 것에 주목한다. 이미 세 살 때부터 격차를 보이기 시작하는 비인지적 능력은 나이가 들수록 확대될 뿐 줄어들지 않는다. 교육수준이 높고 소득 수준이 높은 집안의 자식일수록 그런 교육이 잘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스티븐 레빗 교수가 주장한 것처럼 부모가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것은 아이의 학업적 성취와 상관관계가 낮지만, 집안에 책이 많다는 것은 아이의 학업적 성취와 높은 상관 관계를 보이는 것도 헤크만의 설명에 따르면 이해될 수 있다. 비인지적 능력이 낮은 사람이 인지적 능력을 높이기 위한 능력에 투자하는 행동은 효과가 낮지만, 비인지적 능력이 높은 사람은 굳이 인지적 능력을 높이기 위한 인위적 행동을 하지 않아도 본인의 일상적인 행동자체가 아이들에게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즉, 본인들이 스스로 책을 많이 읽어서 집에 책이 많은 경우, 그런 사람의 아이들이 오히려 스스로 책을 찾아 읽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헤크만은 그래서 미국의 교육 자원이 조금 더 낮은 연령의 아이들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특히 비인지적 능력을 자극하고 개발하는 데 일찍부터 자원이 투자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회적 불평등을 낮추기 위한 그의 정책적 제안들은 오바마의 개인적 경험과 화학 작용을 일으켜 그의 교육 개혁에 일정부분 반영되기 시작하고 있다.
나탈리 포트만과는 달리 김연아는 제대로 학교를 다니지 않았다. 그녀는 대회에 나가고, 광고를 촬영하고, 올림픽을 홍보하느라 바빴으니 그럴 틈이 없었던 것은 놀랍지 않다. 따라서 학생을 가르칠 만한 지적인 능력과 실질적인 자격은 그녀에게 없다. 그런 온통 그런 교생들만 실습을 나온다면 그건 학생들에게 큰 폐해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교생 실습을 나온 이유는 그녀가 속한 과를 졸업하려면 교생 실습이 필수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가르칠 게 없는 교생이 배울 게 없는 학생들 앞에서 선생님 노릇을 하는 것은 정상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물론 그녀는 자신의 스케이트 선수로서의 경험담과 스타로서의 깨달음을 아이들과 나눌 수 있다. 그것 자체로만 본다면 학생들의 입장에서는 돈을 주고도 얻을 수 없는 소중한 것들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다. 하지만, 그러한 이벤트는 분명히 ‘티칭’이 아니라 일종에 ‘쇼’에 가깝다.
대중 스타는 특별한 사람들이다. 차별이 없는 사회는 사회적 불평등을 점점 확대시킨다는 것이 나의 일관된 주장인데, 대중 스타들은 그 정점에 있다. 기껏해야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고, 시장의 효율성을 올리는 것이 주된 사회적 기여인 트레이더에 비해서 대중 스타는 적어도 무엇인가를 만들어낸다. 그것은 노래일수도 있고, 연기일수도 있고, 멋진 경기일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들이 너무나 많은 것을 가져간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소득 1%에 들어가는 가장 쉬운 방법은 변호사와 의사가 되는 것이지만, 0.1%에 들어가려면 변호사나 의사가 되는 것으로 어렵다. 0.1%의 절반 정도는 타이거 우즈와 같은 스포츠 스타거나 레이디 가가와 같은 가수 등의 대중 스타다. 나머지 절반은 대기업 CEO들이다. 우리 나라의 경우에도 김연아 같은 스포츠 스타이나 이효리 같은 가수가 몇 십억의 소득을 벌어들이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들이 그렇게 높은 소득을 벌어들일 수 있는 것은 물론 대중이 자신의 호주머니에서 십시일반 덜어주기 때문이다. 기업은 대중이 환호하는 스타에게 기꺼이 돈을 쓰고, 그 돈은 당연히 그 기업의 제품을 소비하는 소비자 대중에게서 나오는 것이다. 반대로 말하자면, 대중이 원하지 않고 혐오하는 짓을 대중 스타가 지속적으로 하기란 쉽지 않다. 탈세 혐의로 처벌 받은 강호동과 인순이가 자숙하며 고개를 숙이는 것도 그 때문이다.
한국처럼 대중의 인기도의 부침이 큰 나라에서 김연아가 저런 짓을 할 수 있는 것은 대중이 그런 행동을 용납할 것이란 생각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중의 인기를 먹고 사는, 엄청난 돈과 지위를 가진 스타가 “교생 실습은 쇼”라는 정도의 발언을 갖고 명예훼손을 일삼는다면 대중은 아무 것에도 마음대로 말할 수 없다. 게다가 황상민의 발언에는 상당한 사회적 맥락이 닿아 있다. 그가 연세대 교수이지만 그의 발언이 다만 고려대만 겨냥한 것은 아니다. 김연아의 교생실습이 ‘쇼’라면 연세대를 다니고 있다는 다른 스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런 말의 정황을 이해하면서도 김연아가 황상민을 고소한 것이라면 그녀는 참 고약하다. 그건 강용석이 개그맨 최효종을 고소한 것 보다 더 나쁜 짓이다. 강용석이 ‘집단 모욕죄’라는 것이 얼마나 법리적으로 어이없는 것인지를 보여주기 위해서 최효종이란 불특정 다수 중 한 명을 골라 ‘쇼’를 한 것이라면, 김연아는 자신을 건드리지 말라는 ‘폭력’을 휘두르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김연아가 대중의 인기를 먹고 사는 스타라는 점에서 나를 포함한 대중이 반성해야 할 면이 크다. 우리는 사회가 불평등해지는 과정에 너무 무심하다. 가진 사람들은 사회적 불평등의 해소가 장기적으로 자신들에게 유리할 것이란 관점이 없다. 없는 사람들은 사회적 불평등에 신음할 뿐 그런 문제를 해소할 정치인들을 골라서 지지할 의지가 없다. 그리고 중간 어디쯤 있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고 있다. 이런 구조가 김연아로 하여금 ‘쇼’라는 말에 발끈해서 교수를 고소하게 만드는 오만한 행동을 만들었을 것이다. 김연아의 ‘폭력’을 멈출 사람은 대중인 우리뿐이고, 그것이 평생을 ‘쇼’와 함께 한 김연아에 지금 필요한 ‘공부’다.
학생을 선발할 선발권이 100% 대학에게 있다고 가정하자. 그리고 세계 최고 수준인 그 대학에서 학생을 선발할 전권은 당신에게 있다고 하자. 시험성적이 좋든 나쁘든, 얼굴이 잘 생겼든 못 생겼든, 여자든 남자든,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당신은 원하는 학생을 마음대로 뽑을 수 있다. 지금 미국의 대학 모습이기도 하다. 당신은 과연 어떤 학생을 뽑겠는가? 스포츠 스타인 김연아를 뽑겠는가 안 뽑겠는가? 소녀시대 제시카를 뽑겠는가 안 뽑겠는가? 빅뱅의 G 드래곤을 뽑겠는가 안 뽑겠는가? 시험을 잘 본 순서대로 학생을 뽑겠는가 아니면 각종 기록을 보면서 학생의 집안 배경과 성장 환경도 감안해서 뽑겠는가? 성적으로 보면 올 수 없는 재벌집 아들이 학교에 30억쯤 기부를 한다고 한다. 뽑겠는가 안 뽑겠는가?
신념이나 철학을 내세우지 않고 철저하게 학교의 이익을 대변해야 하는 건 나의 도덕적 의무다. 그게 사회적으로 어떤 영향을 가져올지에 상관없이 학교에 이익에 부합하도록 학생 선발권을 행사하는 것이 나의 윤리적 행동이라는 뜻이다. 책임 윤리와 상관없는 상황윤리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나는 ‘수능’이나 ‘SAT’ 처럼 표준화된 학력평가검사만으로 학생을 뽑지 않을 것이다. 학력평가점수가 보여주는 인간의 면모는 극히 단면적이기 때문이다. 학력평가점수와 사회적 성취와 더 높은 상관관계를 보이는 것이 있다. 노벨상 수상자인 시카고 대학의 경제학자 제임스 헤크만이 연구한 바에 따르면, 수능이 보여주는 인지적 능력보다 더 사회적 성취와 높은 상관관계를 보이는 것은 인성적 자질과 같은 비인지적 능력이다. 예를 들어, ‘성실성’은 임금과 사회적 성취와 높은 상관관계를 보인다. 그렇다면, 이러한 비인지적 능력을 평가할 방법이 있을까?
비인지적 능력은 안타깝게도 학교에서 교육되기 어렵다. 비인지적 능력의 차이는 보통 3세 정도부터 나타나는데, 비인지적 능력이 사회적 성취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알기 쉽지 않고, 안다고 해도 정확히 무엇을 아이들을 위해 해줘야할지 알기도 어렵다. 무엇보다 제한된 학교의 자원을 생각할 때 비인지적 능력을 올리는 교육을 쉽게 하기도 어렵다. 그러다 보니 비인지적 능력에 대한 교육을 할 수 있는 것은 부모를 비롯한 가정뿐이다. 우선 시간이 있어야 하고, 교육하는 사람 자신이 비인지적 능력이 높아야 하기 때문이다. 비인지적 능력은 사회적 성취와 높은 상관관계를 갖기 때문에, 그런 능력이 있는 사람은 대개 사회적 지위가 높고 소득 수준이 높다. 따라서, 비인지적 능력의 차이를 줄이려는 사회적 고려 없이 비인지적 능력을 학생선발에 감안하면 돈이 많고 사회적 지위가 높은 집의 자식들이 대학에 들어가기 훨씬 쉬워진다. 언뜻 보면 대학이 자신의 수준을 떨어뜨리는 것 같지만, 미국의 명문대학이 아들 부시를 기꺼이 입학 시키는 것도 이러한 합리적 근거가 있다. 그리고 결국 그는 대통령이 되는 의외의 결과를 만들었다. 미국에서도 아들과 아버지가 대통령이 되는 건 역사적으로 전례가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내가 이런 식으로 집안이 좋고 돈이 많은 자식들만 합격시킬까? 물론 그렇지 않을 것이다. 나는 공부를 잘 하는 최고의 수재와 천재들도 뽑을 것이다. 그런 학생들이 학교에 제공하는 지적인 분위기, 학문적 성취, 그리고 사회에서의 성공은 학교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스포츠 스타와 연예인도 뽑을 것이다. 나탈리 포트만도 뽑을 것이고, 제레미 린도 뽑을 것이며, 요요 마도 뽑을 것이다. 장영주도 지원만 한다면 기꺼이 뽑을 것이다. 학교를 다채롭게 만들고 학생들에게 풍부한 자극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학교의 지성적 수준과 맞지 않는 지적 수준을 보이면 시험을 보는 과정에서 떨어져 나갈 것이다. 이런 식으로 사람을 뽑고 나면 미국 대학의 모습이 된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학생을 선발하다 보니, 미국의 사회적 불평등은 교육이란 제도를 통해서 더욱 견고해지고 심각해졌다. 머리가 똑똑하고 성적이 좋아도, 비슷한 수준의 부자 집 자식보다 대학에 들어가기가 훨씬 어려워진 것이다. 그래서 적극적으로 도입한 것이 미국의 대학선발고사인 ‘SAT’다. 우리나라가 대학선발고사인 학력고사만으로 학생들을 선발하다가 다양한 선발기준이란 이름으로 자의적 선발권을 학교에 준 것과는 달리, 미국은 자의적으로만 학생을 선발하다가 표준적인 학력평가시험 점수를 선발의 기준으로 삼기 시작한 것이다. 사회적 불평등이 악화되는 것을 더 이상 간과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대학 자신의 이해를 최대한으로 올리려는 대학과 사회적 불평등을 줄이기를 원하는 사회(대중)간에는 적절한 긴장관계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대학은 자신의 이해관계만을 적극적으로 추구하게 된다. 예컨대, 고려대학교의 입장에서는 한 두 명의 김연아를 받아들이는 것은 학교의 수준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 반면, 자신의 명성과 이름을 알리는 데는 도움이 된다. 나탈리 포트만이 하버드를 진학해서 하버드가 유명해진 것은 아니지만, 유명한 하버드가 나탈리 포트만이 여러 학교 중에서 하버드를 선택함으로써 조금이라도 더 유명해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미국은 하버드 말고도 수십 개의 명문 대학이 있다. 그러나 한국처럼 소위 3개의 대학만 명문 대학 취급을 받는 나라에서 김연아 류의 학생 선발이 빈발해지면 필연적으로 사회적 불평등은 악화된다. 학교가 뽑을 수 있는 학생의 수는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고, 김연아와 같은 스타가 별 어려움 없이 학교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은 이미 다른 기준으로도 많은 학생들이 상대적으로 열등한 학업 성취도를 갖고도 대학에 쉽게 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은 돈이 많고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의 자식들이 훨씬 유리하다. 김연아처럼 본인이 돈이 많고 사회적 지위가 높은 경우는 말할 것도 없다.
제임스 헤크만은 사회적 불평등을 줄이기 위한 교육 방법과 교육제도의 고안을 위해 연구를 하고 있다. 그는 성실함, 집중력, 온순함과 같은 좋은 인성적 성품이 생각보다 빠른 시기부터 큰 격차를 보여준다는 것에 주목한다. 이미 세 살 때부터 격차를 보이기 시작하는 비인지적 능력은 나이가 들수록 확대될 뿐 줄어들지 않는다. 교육수준이 높고 소득 수준이 높은 집안의 자식일수록 그런 교육이 잘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스티븐 레빗 교수가 주장한 것처럼 부모가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것은 아이의 학업적 성취와 상관관계가 낮지만, 집안에 책이 많다는 것은 아이의 학업적 성취와 높은 상관 관계를 보이는 것도 헤크만의 설명에 따르면 이해될 수 있다. 비인지적 능력이 낮은 사람이 인지적 능력을 높이기 위한 능력에 투자하는 행동은 효과가 낮지만, 비인지적 능력이 높은 사람은 굳이 인지적 능력을 높이기 위한 인위적 행동을 하지 않아도 본인의 일상적인 행동자체가 아이들에게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즉, 본인들이 스스로 책을 많이 읽어서 집에 책이 많은 경우, 그런 사람의 아이들이 오히려 스스로 책을 찾아 읽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헤크만은 그래서 미국의 교육 자원이 조금 더 낮은 연령의 아이들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특히 비인지적 능력을 자극하고 개발하는 데 일찍부터 자원이 투자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회적 불평등을 낮추기 위한 그의 정책적 제안들은 오바마의 개인적 경험과 화학 작용을 일으켜 그의 교육 개혁에 일정부분 반영되기 시작하고 있다.
나탈리 포트만과는 달리 김연아는 제대로 학교를 다니지 않았다. 그녀는 대회에 나가고, 광고를 촬영하고, 올림픽을 홍보하느라 바빴으니 그럴 틈이 없었던 것은 놀랍지 않다. 따라서 학생을 가르칠 만한 지적인 능력과 실질적인 자격은 그녀에게 없다. 그런 온통 그런 교생들만 실습을 나온다면 그건 학생들에게 큰 폐해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교생 실습을 나온 이유는 그녀가 속한 과를 졸업하려면 교생 실습이 필수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가르칠 게 없는 교생이 배울 게 없는 학생들 앞에서 선생님 노릇을 하는 것은 정상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물론 그녀는 자신의 스케이트 선수로서의 경험담과 스타로서의 깨달음을 아이들과 나눌 수 있다. 그것 자체로만 본다면 학생들의 입장에서는 돈을 주고도 얻을 수 없는 소중한 것들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다. 하지만, 그러한 이벤트는 분명히 ‘티칭’이 아니라 일종에 ‘쇼’에 가깝다.
대중 스타는 특별한 사람들이다. 차별이 없는 사회는 사회적 불평등을 점점 확대시킨다는 것이 나의 일관된 주장인데, 대중 스타들은 그 정점에 있다. 기껏해야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고, 시장의 효율성을 올리는 것이 주된 사회적 기여인 트레이더에 비해서 대중 스타는 적어도 무엇인가를 만들어낸다. 그것은 노래일수도 있고, 연기일수도 있고, 멋진 경기일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들이 너무나 많은 것을 가져간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소득 1%에 들어가는 가장 쉬운 방법은 변호사와 의사가 되는 것이지만, 0.1%에 들어가려면 변호사나 의사가 되는 것으로 어렵다. 0.1%의 절반 정도는 타이거 우즈와 같은 스포츠 스타거나 레이디 가가와 같은 가수 등의 대중 스타다. 나머지 절반은 대기업 CEO들이다. 우리 나라의 경우에도 김연아 같은 스포츠 스타이나 이효리 같은 가수가 몇 십억의 소득을 벌어들이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들이 그렇게 높은 소득을 벌어들일 수 있는 것은 물론 대중이 자신의 호주머니에서 십시일반 덜어주기 때문이다. 기업은 대중이 환호하는 스타에게 기꺼이 돈을 쓰고, 그 돈은 당연히 그 기업의 제품을 소비하는 소비자 대중에게서 나오는 것이다. 반대로 말하자면, 대중이 원하지 않고 혐오하는 짓을 대중 스타가 지속적으로 하기란 쉽지 않다. 탈세 혐의로 처벌 받은 강호동과 인순이가 자숙하며 고개를 숙이는 것도 그 때문이다.
한국처럼 대중의 인기도의 부침이 큰 나라에서 김연아가 저런 짓을 할 수 있는 것은 대중이 그런 행동을 용납할 것이란 생각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중의 인기를 먹고 사는, 엄청난 돈과 지위를 가진 스타가 “교생 실습은 쇼”라는 정도의 발언을 갖고 명예훼손을 일삼는다면 대중은 아무 것에도 마음대로 말할 수 없다. 게다가 황상민의 발언에는 상당한 사회적 맥락이 닿아 있다. 그가 연세대 교수이지만 그의 발언이 다만 고려대만 겨냥한 것은 아니다. 김연아의 교생실습이 ‘쇼’라면 연세대를 다니고 있다는 다른 스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런 말의 정황을 이해하면서도 김연아가 황상민을 고소한 것이라면 그녀는 참 고약하다. 그건 강용석이 개그맨 최효종을 고소한 것 보다 더 나쁜 짓이다. 강용석이 ‘집단 모욕죄’라는 것이 얼마나 법리적으로 어이없는 것인지를 보여주기 위해서 최효종이란 불특정 다수 중 한 명을 골라 ‘쇼’를 한 것이라면, 김연아는 자신을 건드리지 말라는 ‘폭력’을 휘두르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김연아가 대중의 인기를 먹고 사는 스타라는 점에서 나를 포함한 대중이 반성해야 할 면이 크다. 우리는 사회가 불평등해지는 과정에 너무 무심하다. 가진 사람들은 사회적 불평등의 해소가 장기적으로 자신들에게 유리할 것이란 관점이 없다. 없는 사람들은 사회적 불평등에 신음할 뿐 그런 문제를 해소할 정치인들을 골라서 지지할 의지가 없다. 그리고 중간 어디쯤 있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고 있다. 이런 구조가 김연아로 하여금 ‘쇼’라는 말에 발끈해서 교수를 고소하게 만드는 오만한 행동을 만들었을 것이다. 김연아의 ‘폭력’을 멈출 사람은 대중인 우리뿐이고, 그것이 평생을 ‘쇼’와 함께 한 김연아에 지금 필요한 ‘공부’다.
Wednesday, June 06, 2012
말도 사람도 잃지 않는 방법
아버지는 40년이 넘도록 자식들에게 한번도 큰 소리로 화를 내거나 매를 들지 않으셨다. 아버지가 욕하는 모습은 당연히 본 적이 없다. 부모님은 이제 모두 칠순이 넘으셨지만, 그 분들이 20대 젊은 사람에게 반말하는 모습은 요즘도 본 적이 없다. 욕하는 모습도 본 적이 없다. 삼형제로 치고 받고 자랐지만, 우리는 서로에게 거의 욕이란 걸 쓴 적이 없다. 진짜 화가 나면 몇 마디 던진 적이 있지만, 그 때 뿐이었다. 용산의 이름 없는 조그만 사립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올라가서 제일 놀랐던 것은 아이들이 입에서 욕이 떠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다. 고등학교에서 욕을 참 맛깔스럽게 쓰는 친구를 사귀었는데, 참 남자답고 멋진 면이 많은 친구였다. 금융시장에서도 그런 친구를 만나게 됐는데, 괜히 그 친구 생각이 나서 예전엔 자주 만났었다. 역시 재밌고, 남자답고, 자신감이 있는 친구였다. 그들 때문에, 욕을 안 쓰면 좋겠지만 욕을 어떻게 쓰느냐가 더 관건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골프를 치러가서 캐디를 대하는 것을 보고 사람을 나눌 수 있다. 좋고 나쁘고 상관없이 그냥 셋으로 나눌 수 있다. 캐디에게 반말을 하는 사람, 캐디에게 깍듯하게 존대말을 쓰는 사람, 그리고 그 중간 어딘가에 있는 사람. 나는 캐디에게 깍듯하게 존대말을 쓰는 편이고, 사용한 골프채를 받아주거나 새 채를 건네줄 때는 항상 "고맙습니다"라고 이야기한다. 재밌는 것은 매홀 매번 그렇게 말하다 보면, 후반이 되면 캐디가 그린에서 내 볼을 아주 정성스럽게 놓아주는 것이 느껴진다. 나도 모르게 살짝 타수를 낮추어 스코어지에 적어 준다. 심지어 내기를 하고 있는데, 내가 한 타 덜 쳤다고 우겨 주기도 한다. 그래서, 정확한 스코어를 알려면 미리 "제 건 똑바로 정확하게 적어주세요"라고 이야기를 해야 한다. 오늘도 분명히 그렇게 말했는데, 경기가 끝나고 나니 역시 4-5타 정도는 적게 적었다. 그런 일이 몇 십번 반복해서 벌어지면, 그런 일이 생기는데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임수경 사건. 백요셉이란 특이한 이름의 탈북자가 말하는 정황은 뭔가 이상하다. 글은 순진한 척 기술되고 있지만, 그가 만들어낸 정황은 상당히 교활한 구석이 있다. 임수경의 입장에서는 그의 말투나 태도가 거슬렸을 수 있다. 나의 인간관계의 범주를 보면 그런 사람을 만날 일은 거의 없지만, 그래도 가끔 그런 유형의 사람을 만난다. 그곳은 예비군 훈련장일 수도 있고, 운전 중 도로일 수도 있다. 하지만, 무례하고 예의없는 유형의 인간에게 똑같이 육두문자를 쓰고 근육을 자랑하면 사태는 꼬이고 복잡해지는 법이다. 그걸 알면서도 반말과 육두문자를 쓰는 사람은 그런 앞날의 사태에 대한 이성적 판단이 어렵거나 반말과 육두문자가 일상화되어 있는 사람일 것이다. 둘 중 어느 것이던 상관없이 이제 막 뽑힌 전국구 국회의원이 냉정을 잃고 그런 행동을 보인 것에 환호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물론 그런 상황에서 추상같은 냉정함을 유지하는 사람이라면, 애초에 밀입북 같은 건 하지 않았겠지만. 이제 임수경을 제명하자는 의견(의 탈을 쓴 막말)이 등장하는 상황에서 이제 임수경은 많은 걸 스스로 입증해 내야 한다.
오늘 또 떠올리는 공자의 한 마디. "더불어 말한 만한 상대인데도 더불어 말하지 아니하면 그 사람을 잃어버리고, 더불어 말한 만한 상대가 아닌데도 더불어 말하면 그 말을 잃어 버린다.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은 사람을 잃지도 않고, 또한 말도 잃지 아니 한다." (공자, 김용옥 논어한글역주)
골프를 치러가서 캐디를 대하는 것을 보고 사람을 나눌 수 있다. 좋고 나쁘고 상관없이 그냥 셋으로 나눌 수 있다. 캐디에게 반말을 하는 사람, 캐디에게 깍듯하게 존대말을 쓰는 사람, 그리고 그 중간 어딘가에 있는 사람. 나는 캐디에게 깍듯하게 존대말을 쓰는 편이고, 사용한 골프채를 받아주거나 새 채를 건네줄 때는 항상 "고맙습니다"라고 이야기한다. 재밌는 것은 매홀 매번 그렇게 말하다 보면, 후반이 되면 캐디가 그린에서 내 볼을 아주 정성스럽게 놓아주는 것이 느껴진다. 나도 모르게 살짝 타수를 낮추어 스코어지에 적어 준다. 심지어 내기를 하고 있는데, 내가 한 타 덜 쳤다고 우겨 주기도 한다. 그래서, 정확한 스코어를 알려면 미리 "제 건 똑바로 정확하게 적어주세요"라고 이야기를 해야 한다. 오늘도 분명히 그렇게 말했는데, 경기가 끝나고 나니 역시 4-5타 정도는 적게 적었다. 그런 일이 몇 십번 반복해서 벌어지면, 그런 일이 생기는데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임수경 사건. 백요셉이란 특이한 이름의 탈북자가 말하는 정황은 뭔가 이상하다. 글은 순진한 척 기술되고 있지만, 그가 만들어낸 정황은 상당히 교활한 구석이 있다. 임수경의 입장에서는 그의 말투나 태도가 거슬렸을 수 있다. 나의 인간관계의 범주를 보면 그런 사람을 만날 일은 거의 없지만, 그래도 가끔 그런 유형의 사람을 만난다. 그곳은 예비군 훈련장일 수도 있고, 운전 중 도로일 수도 있다. 하지만, 무례하고 예의없는 유형의 인간에게 똑같이 육두문자를 쓰고 근육을 자랑하면 사태는 꼬이고 복잡해지는 법이다. 그걸 알면서도 반말과 육두문자를 쓰는 사람은 그런 앞날의 사태에 대한 이성적 판단이 어렵거나 반말과 육두문자가 일상화되어 있는 사람일 것이다. 둘 중 어느 것이던 상관없이 이제 막 뽑힌 전국구 국회의원이 냉정을 잃고 그런 행동을 보인 것에 환호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물론 그런 상황에서 추상같은 냉정함을 유지하는 사람이라면, 애초에 밀입북 같은 건 하지 않았겠지만. 이제 임수경을 제명하자는 의견(의 탈을 쓴 막말)이 등장하는 상황에서 이제 임수경은 많은 걸 스스로 입증해 내야 한다.
오늘 또 떠올리는 공자의 한 마디. "더불어 말한 만한 상대인데도 더불어 말하지 아니하면 그 사람을 잃어버리고, 더불어 말한 만한 상대가 아닌데도 더불어 말하면 그 말을 잃어 버린다.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은 사람을 잃지도 않고, 또한 말도 잃지 아니 한다." (공자, 김용옥 논어한글역주)
휴일 풍경
작년 6월 이후 골프를 친 적이 거의 없는데, 오늘 오랜만에 골프를 다녀오니 아이들은 놀이터에 가고 없고, 처는 자고 있다. 아이들이 뭐하고 노나 보러 놀이터에 나갔다. 놀이터는 두 부류로 나뉘어져서 한쪽에서는 5년 아이들이 주축이 되어 축구를 하고 있고, 한쪽에서는 아직 어린 아이들이 부모들과 놀고 있다. 7살인 둘째 혼자 그네를 타려고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2학년인 형은 어디가고 혼자 이러고 있냐고 물어봤더니, "저는 축구를 잘 못해요"한다. 축구를 못하는 게 아니라 7살 아이로서 5학년 형아들과 축구를 하긴 역부족인 거다. 2학년 큰아이는 깍두기로 끼어서 그래로 공을 만져는 보는 중이다. 아이의 그네를 밀어주다가, 아이가 춘향이처럼 멀리 그네를 타기에 나도 해볼까 하고 흉내 내다고 그네 기둥에 머리를 박치기했다. (지금도 아프다)
그네타기를 끝낸 아이를 업고 축구쪽으로 간다. 조금 걷는데 아이가 내리겠다고 한다. 형들이 있는데 업히는 모습을 보이기 싫은 거다. 아이를 안고 앉아, 2학년 아들과 5학년 아이들이 축구하는 걸 지켜본다. 안고 있는 7살 아이의 마음이 전해져온다. "저기는 내가 놀 수 있는 공간이 아니야"라고 생각하는 것만 같다. 2학년 아들이 물병의 물을 마신다. 다른 아이들이 한 모금씩 달라고 한다. 아이가 생색을 내면서 물을 건내 준다. 5학년 아이 중에 하나가, "경도하자"라고 외치고 아이들이 전부 모인다. 가위바위보를 해서 편을 가를 모양이다. '경도'는 경찰과 도둑의 준말인데, 놀이의 디테일은 나도 모른다. 7살 아이에게 "넌 경도 안해?"라고 묻는다. 아이가 형들이 있는 쪽으로 달려간다. 5학년 형아 중에 친한 형의 어깨를 툭하고 치며 웃는다. 형아가 아이를 자기 무릎에 앉혀준다. 놀이터의 시간은 너무 천천히 흐르고, 아이들간의 알 수 없는 질서가 나를 웃게 만든다. 나는 아이들에게 간다고 인사를 한다. 아이들이 내게 손을 흔든다. 반포나 목동에서는 볼 수 없는 놀이터 풍경이라고 한다.
그네타기를 끝낸 아이를 업고 축구쪽으로 간다. 조금 걷는데 아이가 내리겠다고 한다. 형들이 있는데 업히는 모습을 보이기 싫은 거다. 아이를 안고 앉아, 2학년 아들과 5학년 아이들이 축구하는 걸 지켜본다. 안고 있는 7살 아이의 마음이 전해져온다. "저기는 내가 놀 수 있는 공간이 아니야"라고 생각하는 것만 같다. 2학년 아들이 물병의 물을 마신다. 다른 아이들이 한 모금씩 달라고 한다. 아이가 생색을 내면서 물을 건내 준다. 5학년 아이 중에 하나가, "경도하자"라고 외치고 아이들이 전부 모인다. 가위바위보를 해서 편을 가를 모양이다. '경도'는 경찰과 도둑의 준말인데, 놀이의 디테일은 나도 모른다. 7살 아이에게 "넌 경도 안해?"라고 묻는다. 아이가 형들이 있는 쪽으로 달려간다. 5학년 형아 중에 친한 형의 어깨를 툭하고 치며 웃는다. 형아가 아이를 자기 무릎에 앉혀준다. 놀이터의 시간은 너무 천천히 흐르고, 아이들간의 알 수 없는 질서가 나를 웃게 만든다. 나는 아이들에게 간다고 인사를 한다. 아이들이 내게 손을 흔든다. 반포나 목동에서는 볼 수 없는 놀이터 풍경이라고 한다.
Tuesday, June 05, 2012
마켓 업데이트
책에 신경 쓰느라 정신이 없는 사이 마켓에 많은 일들이 벌어졌다.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가 있을 것이냐 없을 것이냐 논란이 계속되고 있고 그 와중에 금융시장은 높은 변동성에 롤러 코스트를 탔다. 그리스 사태에 낙관적인 쪽은 "돈 준다는 데 거절하는 게 바보"라는 단순한 논리지만, 그리스가 유로에 남아서 얻는 장기적인 이익이 없다는 점에서 결국 유로를 떠날 수 밖에 없을 것이란 비관적 전망은 긴 관점으로 보면 맞을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그 '장기적'이란 게 얼마나 오랜 시간을 두고 이루어질 것인가,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리스가 6월 17일 선거에서 유로존을 탈퇴한다는 것이 가시화되면 시장은? 일단 패닉할 가능성이 높지만, 오히려 불확실성 해소로 전개될 것이다. 그리스와 달리 스페인이나 포르투갈 그리고 이탈리아는 유로존을 탈퇴할 리 없기 때문에, 오히려 정책을 결정하는 쪽은 그리스 이외의 문제에 집중할 수 있다. 그리스의 입장에서는 단기적으로 충격이 있어도 장기적으로 국가적 경쟁력을 회복하는 길이 될 수 있다. 물론, 문제는 그 단기적인 충격을 그리스가 과연 버텨낼 수 있을까 하는 것이지만.
소로스가 유로에 관해서 연설을 해서, 세계적 관심을 모았는데, 크루그만이 코멘트를 했다. 새삼스러울 것은 없는 내용이라는 것인데, 유로의 문제는 경쟁력이 서로 다른 국가들이 단일 통화를 사용함으로서 '유로 버블'이 탄생했고 그 결과로 독일 경제는 호황을 누렸다는 것. 그리고 사람들은 경쟁력이 떨어지는 남유럽이 (마치 같은 통화를 쓰는 독일처럼) 안전하다고 착각했으며, 각국 금리가 떨어졌다. 그런데 그게 아니란 걸 알아차리면서 그들 국가들의 국채 금리가 폭등하고 있고, 그 금리로는 도저히 상환을 할 수가 없다. 결국 다들 독일만 쳐다 보고 있는데, 독일의 정치적 입장은 엄청난 위기가 벌어져야 비로서 움직일 수 있다. 어제 월스트리트 저널이 독일이 유로본드와 뱅크 유니언에 대해서 처음으로 긍정적인 모습을 보였다고 보도했는데, 이렇게 되면 유로 국가들은 재정 주권을 EU에 넘긴다는 의미가 되지만 유럽은 더 타이트한 공동체가 된다. 하지만, "유럽은 부채를 공유할 필요가 있다"는 오바마의 충고를 메르켈이 거부했다는 또 다른 뉴스에 보듯, 현실화되기에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조지 소로스는 17일 선거에는 그리스가 잔류할 것으로 보지만, 그리스 상황은 3개월 이내에 한계에 봉착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때까지 독일이 유로존을 살리는 선택을 하지 않으면, 유로존을 무질서한 해체의 과정을 겪을 것이라고. 만약, 지금처럼 각 나라의 수익률이 유로존 출범 이전으로 돌아가면, 유로는 자연스럽게 해체될 것이고, 그 경우 유로의 결제시스템인 '타겟2'(독일이 각 유로존 국가들에게 받아야 하는데 지급이 안 된 돈이 현재 7천억 유로 정도)를 통해서 독일이 최대의 피해국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게 조지 소로스의 생각인데, 사실상 독일에게 빨리 행동에 나서라도 촉구한 것이나 다름없다. 유로가 탄생한 문화적 정치적 역사적 배경을 보면, 경제로 추산할 수 없는 평화에 대한 유럽인들의 신념도 반영되어 있기 때문에, 유로의 해체는 필연적으로 유럽과 독일의 위상을 추락시킬 것이다. 하지만, 솔직히 내 생각은 유로가 해체되든 안 되든 유럽의 위상 추락은 상당히 오랜 기간동안 전개될 것 같다.
모건 스탠리는 5월 19-20일 FOMC에서 연준이 양적완화에 나설 확률이 80%정도로 향후 9개월 동안 4천 750억 불의 자산 매입을 할 것이라고 전망. 하지만, 고용지표를 포함한 최근의 지표들이 기대치를 하회한 것은 맞지만 미국이 경기침체로 갈 것이라고 보기엔 터무니 없기 때문에, 연준의 입장에서는 양적완화(QE3)에 대한 신호를 주는 것에 그칠 가능성이 커보인다. 최근에 알랜 그린스펀(‘Fear of the Future’ Keeps Lid on Economic Growth: Greenspan), 폴 크루그만("End This Depression Now": Paul Krugman Urges Public Spending, Not Deficit Hysteria, to Save Economy), 래리 서머스("Look beyond interest rates to get out of the gloom")등이 미국의 현재 상황이나 정책방향에 언급하고 있는데, 알랜 그린스펀은 재정적자가 관리되지 않는 미국의 상황을 걱정하고 있고, 크루그만은 지금은 공격적인 재정정책을 사용해서 경기침체를 극복할 때라고 말하고 있고, 서머스는 재정정책을 어떻게 사용해야 (그린스펀같은 사람들이 걱정하는) 국가 신용도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경제를 부양할 수 있는지 디테일을 언급. 지금의 10년 국채가 1.5%를 조금 넘는 수준의 낮은 펀딩 코스트를 더 많은 돈으로 펀딩을 한 후, 더 효율적인 곳(수익률이 더 높은 곳)에 쓰라는 것. 예를 들어서, 사무실을 임대해서 쓰고 있는 정부가 있다면, 국채 발행한 돈으로 사무실을 구입해서 사용하라는 식. 빌린 돈 보다 수익률이 높은 곳에 투자한다면 국가 신용도에 대한 위험은 없다는 게 서머스의 주장. 이런 논의를 벌이는 석학들이 즐비하다는 게 진짜 미국의 힘이다.
소로스가 유로에 관해서 연설을 해서, 세계적 관심을 모았는데, 크루그만이 코멘트를 했다. 새삼스러울 것은 없는 내용이라는 것인데, 유로의 문제는 경쟁력이 서로 다른 국가들이 단일 통화를 사용함으로서 '유로 버블'이 탄생했고 그 결과로 독일 경제는 호황을 누렸다는 것. 그리고 사람들은 경쟁력이 떨어지는 남유럽이 (마치 같은 통화를 쓰는 독일처럼) 안전하다고 착각했으며, 각국 금리가 떨어졌다. 그런데 그게 아니란 걸 알아차리면서 그들 국가들의 국채 금리가 폭등하고 있고, 그 금리로는 도저히 상환을 할 수가 없다. 결국 다들 독일만 쳐다 보고 있는데, 독일의 정치적 입장은 엄청난 위기가 벌어져야 비로서 움직일 수 있다. 어제 월스트리트 저널이 독일이 유로본드와 뱅크 유니언에 대해서 처음으로 긍정적인 모습을 보였다고 보도했는데, 이렇게 되면 유로 국가들은 재정 주권을 EU에 넘긴다는 의미가 되지만 유럽은 더 타이트한 공동체가 된다. 하지만, "유럽은 부채를 공유할 필요가 있다"는 오바마의 충고를 메르켈이 거부했다는 또 다른 뉴스에 보듯, 현실화되기에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조지 소로스는 17일 선거에는 그리스가 잔류할 것으로 보지만, 그리스 상황은 3개월 이내에 한계에 봉착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때까지 독일이 유로존을 살리는 선택을 하지 않으면, 유로존을 무질서한 해체의 과정을 겪을 것이라고. 만약, 지금처럼 각 나라의 수익률이 유로존 출범 이전으로 돌아가면, 유로는 자연스럽게 해체될 것이고, 그 경우 유로의 결제시스템인 '타겟2'(독일이 각 유로존 국가들에게 받아야 하는데 지급이 안 된 돈이 현재 7천억 유로 정도)를 통해서 독일이 최대의 피해국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게 조지 소로스의 생각인데, 사실상 독일에게 빨리 행동에 나서라도 촉구한 것이나 다름없다. 유로가 탄생한 문화적 정치적 역사적 배경을 보면, 경제로 추산할 수 없는 평화에 대한 유럽인들의 신념도 반영되어 있기 때문에, 유로의 해체는 필연적으로 유럽과 독일의 위상을 추락시킬 것이다. 하지만, 솔직히 내 생각은 유로가 해체되든 안 되든 유럽의 위상 추락은 상당히 오랜 기간동안 전개될 것 같다.
모건 스탠리는 5월 19-20일 FOMC에서 연준이 양적완화에 나설 확률이 80%정도로 향후 9개월 동안 4천 750억 불의 자산 매입을 할 것이라고 전망. 하지만, 고용지표를 포함한 최근의 지표들이 기대치를 하회한 것은 맞지만 미국이 경기침체로 갈 것이라고 보기엔 터무니 없기 때문에, 연준의 입장에서는 양적완화(QE3)에 대한 신호를 주는 것에 그칠 가능성이 커보인다. 최근에 알랜 그린스펀(‘Fear of the Future’ Keeps Lid on Economic Growth: Greenspan), 폴 크루그만("End This Depression Now": Paul Krugman Urges Public Spending, Not Deficit Hysteria, to Save Economy), 래리 서머스("Look beyond interest rates to get out of the gloom")등이 미국의 현재 상황이나 정책방향에 언급하고 있는데, 알랜 그린스펀은 재정적자가 관리되지 않는 미국의 상황을 걱정하고 있고, 크루그만은 지금은 공격적인 재정정책을 사용해서 경기침체를 극복할 때라고 말하고 있고, 서머스는 재정정책을 어떻게 사용해야 (그린스펀같은 사람들이 걱정하는) 국가 신용도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경제를 부양할 수 있는지 디테일을 언급. 지금의 10년 국채가 1.5%를 조금 넘는 수준의 낮은 펀딩 코스트를 더 많은 돈으로 펀딩을 한 후, 더 효율적인 곳(수익률이 더 높은 곳)에 쓰라는 것. 예를 들어서, 사무실을 임대해서 쓰고 있는 정부가 있다면, 국채 발행한 돈으로 사무실을 구입해서 사용하라는 식. 빌린 돈 보다 수익률이 높은 곳에 투자한다면 국가 신용도에 대한 위험은 없다는 게 서머스의 주장. 이런 논의를 벌이는 석학들이 즐비하다는 게 진짜 미국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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